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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부부싸움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23-10-31 23:24:00

〈192〉남의 의견을 좇아가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초등학교 4학년 민호는 친구들에게 자기 의견을 좀처럼 말하지 못한다. “떡볶이 먹을래? 햄버거 먹을래?”라고 간단한 것을 물어도 “너희들 먹는 걸로”라고 말한다. 놀이를 정할 때도, 시간을 정할 때도 그런다. 심지어 자기가 싫어하는 음식이나 놀이, 혹은 안 되는 시간도 자기 생각이나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늘 좇아만 간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할 때는 여러 가지를 면면이 살펴보아야 하지만, 그중 대표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다. 혹시 다음과 같은 말을 일삼지는 않는가. “네가 제대로 하는 게 있기나 해?”, “네가 그렇지 뭐”, “네가 대학이나 가서 밥벌이나 제대로 할지 모르겠다”, “그런 성격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니? 결혼도 힘들겠다”….

이렇게 아이를 비난하는 양육 태도는 아이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내가 이 의견을 말해서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다. 아이는 부모에게 인정을 받아야 밖에서도 인정받는 아이가 된다. 홧김에 한 말이라도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혹시 부부싸움이 잦은가이다. 부부싸움이 잦으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자기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만들 수 있다. 아이는 고성이 오가고 아빠와 엄마가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최악의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인다.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 네 탓이니, 네 잘못이니 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부모를 보며, ‘주장’은 나쁜 것으로 인지하고 만다. ‘주장=싸움’이라고 동일시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큰소리로 자기 말만 하다가 아빠와 엄마가 의가 상하는 최악의 장면을 매번 접하면서 싸움의 원흉을 ‘주장’하는 것으로 여기고 차라리 주장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좋은 일보다 위험하거나 기분 나쁜 경험이 많은 사람은 나쁜 기억을 먼저 떠올린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의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져도 부모가 싸웠을 때의 두려운 감정과 불안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온다.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의 말에 긍정하게 된다.

이런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긍정적인 경험이다. 부정적인 경험을 위주로 길이 뚫린 기억 회로를 없애고 긍정적인 정보 회로를 만들어 발달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스스로 자기주장을 말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아이는 집에서도 간단한 질문조차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할 수 있다. 이때 아이를 다그치거나 바로 훈계부터 하는 태도는 금물이다. 그래서는 아이가 무조건 다른 사람 말에만 따르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이가 우물쭈물하면 “정답은 없어. 괜찮아. 너랑 얘기하고 싶을 뿐이야. 뭘 결정해도 괜찮아. 네 의견이 중요한 거야”라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아이가 용기를 내서 의견을 말하면 옳건 그르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는 점에 대해 듬뿍 칭찬하고 격려해 준다. 간혹 아직 주장을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얼토당토않은 말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도 “다시 한번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자. 그건 바로 들어주기 어려운 면이 있거든. 그렇지만 얘기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아이가 생활 속에서 수시로 이용할 수 있는 대화 창구를 만드는 것도 좋다. ‘포스트잇’이나 ‘화이트보드’ 등을 활용해서 수시로 가족 간에 생각이나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아침마다 아이에게 오늘 먹고 싶은 반찬이 무엇인지 적어 놓고 가라고 한다. 음식 메뉴를 정하는 일과 같이 쉽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도록 한다.

그리고 그동안 부부싸움이 잦았었다면, 아이에게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에게 “자주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해. 아빠와 엄마가 의견을 맞춰 나가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졌어”라고 사과한다.

사람 관계는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다툴 때도 있지만 결국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 나간다. 그 사실을 아이가 깨달을 수 있도록 부모가 노력해야 한다. 아이에게 사과하면 부모의 위신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과가 지닌 위력은 부모의 위신보다 강력하다. 사과 한마디가 상대의 화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서 아물게 하기 때문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