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시작으로 36년간 무상배식
식사 전 인사를 나누는 밥퍼 최일도 목사. 밥퍼 제공
동대문 청량리 재개발 지역 중심에 자리 잡은 다일공동체 ‘밥퍼’에서는 매일 아침부터 자원봉사자들과 다일공동체 직원들이 노숙인과 독거노인들을 위한 배식을 준비한다. 기자가 찾은 10월 20일 오전 9시에도 식당 건물에는 많은 독거노인들과 노숙인들이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무상 배식 시간은 11시부터다.
“자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배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청량리 야채시장에서 시작…
밥퍼는 1988년 11월 최 목사가 신학대학원생일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아내가 학교 선생을 하면서 주는 용돈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의 원래 계획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신학의 중심지인 독일로 유학을 갔다 귀국해 산속에 영성수련센터와 전원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최 목사는 “어느 날 신학 대학원에서 휴강이 생겨 춘천으로 놀러 갈 일이 생겼다. 당시 춘천을 가기 위해서 청량리역에서 열차를 탔어야 했는데 한 할아버지가 찬 바닥에 누워 있었다. 춘천에 갔다 왔을 때도 그 할아버지가 그대로 계셨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최 목사는 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걸 알게 됐고 할아버지를 청량리 설렁탕집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그는 “당시 아내가 주는 용돈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 돈으로 할아버지 설렁탕 한 그릇 배불리 먹여드리고 싶었다”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나흘간 아무것도 못 먹었고 일정한 거주지와 직업도 없었다”고 했다.
최 목사는 노인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청량리역을 찾았다. 노인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인 5명을 더 데리고 왔다.
그는 “청량리에서 이런 모습들을 보니깐 난 내 가족들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싶었다”며 “그날부터 내 용돈은 이분들 설렁탕 사주는 데 다 썼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출이 지속되자 최 목사의 아내는 그가 바람이 난 게 아닌가 의심을 했다고 한다. 오해를 풀기 위해 아내를 설렁탕집으로 데려가 노숙 노인들을 보여줬을 때 그는 이미 아내로부터 ‘대책없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 최 목사는 매일 설렁탕을 사는 게 감당이 안 돼 가스버너를 가지고 나와 노숙인들을 위해 라면을 끓였다고 한다. 하지만 노숙인들에게 계속 라면을 제공한 최 목사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당시 청량리 야채시장 한 켠을 빌려 기증받은 음식 재료들을 가지고 무상 급식을 이어 나갔다.
이렇게 청량리역에서 시작된 무상 급식은 청량리 야채시장, 쌍굴다리를 거쳐 서울시의회와 동대문구청이 제공한 가건물에서 점점 크기를 넓혀 밥퍼와 다일공동체 창설로 이어졌다.
밥퍼에 온 사람들을 격려하는 최일도 목사. 밥퍼 제공
무상 급식을 진행하다 생긴 비극…새로운 시도
최 목사가 이끌고 있는 다일공동체에서는 노숙인과 독거노인들에게 무상 급식을 진행하는 밥퍼 뿐만 아니라 개신교 최초의 무료병원인 ‘다일천사병원’과 호스피스 병동인 ‘다일작은천국’을 운영하고 있다. 다일천사병원이 생긴 데에는 최 목사의 아픈 사연이 있었다.이 씨의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원인 모를 병을 앓았고 유언을 통해 최 목사에게 마지막 장례를 부탁했다. 하지만 이 씨의 사체를 보존하고 시립병원 측은 장례비 80만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수중에 무상 급식을 위한 돈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그는 이 씨의 장례를 치러주지 못했다.
최 목사는 “무상 급식을 받고 이 씨를 알던 노숙인들이 반발이 심했다”며 “그때부터 남은 여생을 그나마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시설과 병원을 짓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청량리 채소 시장 조합원들의 도움을 받아 건물 한 켠에 저소득층, 노숙인들을 진료할 수 있는 다일진료소를 세웠다. 진료소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독교 단체가 성금을 보냈고 현직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자비를 들여 의약품을 구입한 후 방문해 의료 봉사를 하기도 했다.
이후 청량리 주변상인들과 시민들 심지어 당시 청량리 588 성매매촌 종사자들까지 힘을 보태 1147만 5000원이라는 거금이 모였다. KBS가 이같은 내용을 성탄특집으로 방송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이 모여 한국 기독교 최초의 무상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을 설립할 수 있었다. 최 목사는 이 씨를 생각해 병원 밑에 간단한 장례식장도 같이 만들었다고 전했다.
노숙인들이 입원해 있는 다일작은천국과 병원을 짓는데 후원을 한 사람들의 명패.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코로나19로 인한 활동 중단
코로나19 시기 다일공동체 또한 큰 위기를 겪었다. 감염자가 폭증하고 사망자가 지속해서 나오자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했고 그 여파로 일요일을 제외하고 끊임없이 돌아가던 밥퍼도 멈춰선 것이다.최 목사는 “후원도 많이 끊어졌다”며 “밥퍼와 다일공동체 모두 이때가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후원이 끊겨서 재정상 어려웠던 것 보다 밥퍼를 이용하던 노숙자, 독거노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가 어느 정도 완화된 이후 도시락 나눔으로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했지만, 직접 최 목사와 밥퍼 가족들을 대면 못 해서 생기는 외로움은 해결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밥퍼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에게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주된 일이었지만, 독거노인들을 만나고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외로움을 풀어드리는 일도 그만큼 중요시했다”며 “더 크게보면 고독사를 막는 일인데 코로나 시기에는 이걸 해결하기 힘들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독거노인과 소외계층을 위해 따뜻한 밥과 반찬을 담아 배식준비 중인 밥퍼 자원봉사자들. 밥퍼 제공
물가 상승과 밥퍼의 혐오 유해시설 지적
최 목사는 최근 생활 물가 상승이 걱정이라고 전했다. 하루 평일 500~600명, 주말에는 최대 1200명까지 무상급식을 이용하는 노숙인들과 독거노인들이 있는데 생활물가가 오르면서 공과금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밥퍼가 NGO라고 해도 감안해 주는 것이 없다”며 “특히 식재료비가 많이 올라서 밥퍼 나눔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다른 경비를 줄여서라도 무상 급식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최근 동대문구청이 밥퍼 건물을 불법증축, 유해시설로 지정한 것도 최 목사의 큰 걱정거리다. 최 목사는 “지난해 서울시와의 밥퍼 불법 건축물 지정 갈등은 기부채납을 하는 조건으로 마무리됐다”며 “하지만 동대문구청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곳은 서울시 땅에 서울시가 지은 건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청량리 지역에서 36년 동안의 사역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흔들렸지만, 우리를 후원해 주시고 자원봉사 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좋은 식으로 해결하려던 걸 멈췄다”며 다음 공판에서는 전 동대문구청장과 서울시와 만남을 함께했다는 분들을 증인으로 내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그는 최근 전문가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전국적으로 밥퍼 유해시설 지정 및 철거 반대 서명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받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서명은 이날 기준으로 14만 66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또 이런 분쟁과 무관하게 밥퍼 사역은 하루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뚝선 재개발 아파트를 뒤로 하고 묵묵히 밥퍼 나눔을 진행하고 있는 밥퍼나눔운동본부.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암 진단 판정…밥퍼의 미래
동대문구청과의 불법 건축물 갈등으로 심란했던 지난여름 최 목사는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여름에 몸 상태가 이상해서 병원에 갔는데 육종암 진단을 받았다”며 “지금까지 33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전이 판정은 받지 않아 아직 항암치료는 받고 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주변에서는 최 목사의 암 진단 소식에 밥퍼와 다일공동체의 미래를 우려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그는 “밥퍼와 다일공동체를 운영하는 데 도움을 주시는 사회복지학 교수님들은 설령 내가 밥퍼를 내려놓는다고 해도 이같은 사역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내가 나이를 먹고 건강이 더 안 좋아지거나 어떤 상황이 오든 소외계층,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무상 급식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최 목사는 치료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나섰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최일도 목사.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