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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이사회의 씁쓸한 뒷맛 [기자의 눈/변종국]

입력 | 2023-11-02 03:00:00

변종국·산업1부


항공업계는 물론 국내 산업계에서 이런 이사회가 열린 적이 있었을까 싶다. 대한항공과의 통합을 위한 화물 사업 분리 매각 등의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지난달 말 열린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장면들이 여럿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사회를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사내이사였던 진광호 아시아나항공 전무가 돌연 사임했다. 그는 통합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진 전무의 사임으로 이사회 판도가 흔들렸다. 이사 수가 6명에서 5명으로 줄면서 의결에 필요한 과반 셈법이 달라진 것이다. 회사는 “일신상의 이유”라고 사임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외압을 받아 사임했다’, ‘연말 인사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사임했다’ 등의 추측들이 나온다.

진 전무는 ‘찬성’이나 ‘반대’가 부담스러우면 ‘기권표’를 던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사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문제를 회피했다. 사임 이유가 무엇이든 비판에서 자유롭긴 힘들다.

지난달 30일 이사회 당일에는 윤창번 사외이사에 대한 의결 적합성 여부가 논란이 됐다. 윤 사외이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인데, 김앤장이 대한항공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관에는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다. 윤 사외이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관련 직무는 맡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해외 출장 중인 윤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회의 도중 의결 적합성 논란이 계속되자 윤 사외이사는 유감을 표하고 ‘불참석’으로 하겠다며 중도 ‘로그아웃’ 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윤 사외이사를 빼고 의결하자는 쪽과 그를 다시 불러오자는 이들 간에 고성까지 오갔다고 한다.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은 “통합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번 이사회에는 산은 관계자가 참석해 의견을 개진했다. 채권단이 지켜보는데 이사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의견 개진이 가능했을까. 이사회는 결국 7시간 넘는 공회전 끝에 정회했다.

2일 다시 속개한다지만 이사회 결과의 정당성과 공정성에 대해서는 계속 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여러모로 ‘역대급’ 이사회가 아닐 수 없다.



변종국·산업1부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