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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어려운 이주가정 내 아동학대… 그냥 지나치지 말아주세요”

입력 | 2023-11-02 03:00:00

[행복 나눔]이주가정 아동 법률 지원하는 ‘두루’
체류 자격 박탈 걱정에 신고 꺼려… 학대 법률지원 신청 1건도 없어
친인척 없고 시설 입소 어려워… 신고 후 돌봄 공백 발생도 문제
최대한 가정 보존하며 재발 막고, 아동 권리교육 더 일찍 받게 해야



사단법인 두루 소속 변호사들이 2021년 10월 경기 안산시 원곡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원곡동 이주 아동 법률 지원 프로젝트 교육 및 간담회’에서 센터 관계자 등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단법인 두루 제공


“이주배경 아동에 대한 학대는 밖으로 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신고로 인해 부모와 아동의 체류 자격이 흔들릴 수 있어 주변 사람들이 신고 자체를 주저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학대 징후가 보이면 반드시 신고해야 합니다.”

아동·청소년 인권 옹호를 위해 활동해온 사단법인 ‘두루’의 마한얼 변호사(38·사진)는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주배경 아동은 국내에 유입된 이주민의 자녀를 뜻한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19일)을 앞두고 학대받는 아동을 위해 법률 지원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두루를 찾았다.

● 학대받는 이주 아동 돕는 변호사들
두루는 사회공헌 네트워크 ‘행복얼라이언스’의 회원사인 법무법인 지평의 후원을 받는 비영리 공익 변호사 단체다. 행복얼라이언스는 2020년 외국인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기 안산시 아동 100명에게 도시락 1만1000끼를 제공했다. 두루의 법률 지원은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한 또 다른 프로젝트다.

변호사들의 역할은 아동학대 신고 후 진행되는 절차를 학대 피해 아동에게 설명하고,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 아동의 의견이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국선 변호인이 선임된 후에도 피해 아동이 가능한 한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마 변호사는 “아동이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어려워하는 부분을 지원해 주고, 아동의 의견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두루 변호사들은 2021년 안산시와 경기도교육청 공무원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주배경 아동 학대 신고를 독려하고, 법률 지원 체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률 지원 신청은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마 변호사는 “부모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 벌금형이라도 나오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뿐 아니라 부모와 분리된 이주배경 아동은 전혀 갈 곳이 없다”며 “이주배경 아동 학대가 쉽게 노출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주변에서 섣불리 개입했다가 아동의 상황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신고 자체를 꺼린다는 것이다. 마 변호사는 “그래도 신고는 반드시 해야 하고, 신고 후에는 이주배경 아동이 정부의 지원 체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사법절차 끝나도 아동 지원 절실
출입국관리법상 학대 피해 아동에게는 모든 사법 절차를 마칠 때까지 체류 자격이 부여된다. 마 변호사는 이에 대해 “가정 회복이 이뤄지는 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라며 “재판 절차만 마친다고 해서 피해 아동이 안정을 되찾고 안전한 상태가 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결국 충분한 회복 없이 본국으로 부모와 돌아가면 해당 아동은 또다시 학대를 당할 수 있다.

이주배경 학대 피해 아동은 신고 후 돌봄 공백도 발생한다. 마 변호사는 “이주배경 아동은 돌봐줄 친인척이 국내에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학대피해아동쉼터 등과 같은 시설 수급비는 국가에서 지원하는데, 이주배경 아동은 이를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시설에 들어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호 대상 아동의 절반 이상은 아동양육시설 등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주배경 아동은 시설에서조차 거부를 당하기 일쑤다. 정부로부터 수급비 지원을 못 받아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주배경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지원 여부는 전적으로 지자체 역량에 달려 있다. 마 변호사는 “지자체 역량과 정책 순위에 따라 학대 피해 아동이 처하게 될 상황은 천차만별”이라며 “경기 남부 지역에서 베트남 출신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동이 갈 곳이 없어 결국 경기 북부 의정부에 맡겨진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물론 시설 생활이 학대 피해 아동에게 가장 좋은 대안은 아니다. 마 변호사는 “학대 피해 아동은 회복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데, 시설 생활을 하면 그런 걸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며 “단체 생활을 하며 새로운 관계 맺기가 시작되면 눈치를 보거나 긴장을 하게 된다”고 했다. 신고되지 않은 시설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마 변호사는 원래 가정을 가능한 한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대 피해 아동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지원하고 주기적으로 관찰해 학대 재발을 막는 것이다. 마 변호사는 “학대 피해 아동이 가정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학대가 재발하지 않도록 더 집중해서 관찰해야 한다”며 “이주배경 아동의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면 사례 관리가 더 이상 유지되기가 힘들다”고 했다.

● 미취학 아동 대상 ‘권리 교육’ 이뤄져야
이주배경 아동을 대상으로 사전에 권리 교육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 변호사는 “학교에서는 학대 예방 교육을 하기 때문에 적어도 아동이 스스로 어떤 게 학대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서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이뤄질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아동학대 의심 징후를 발견한 주변의 신고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주배경 가정의 특성상 권리 교육도 일찍부터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만6103건이다. 이 중 학대 의심 사례는 4만4531건이었다. 초중고교 직원이 신고한 건수는 6370건(14.0%)으로 신고 의무자 가운데 가장 많았다. 마 변호사는 “이주배경 아동의 학대 피해 예방을 위해 학교 교직원이나 지자체 사회복지 공무원분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