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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제사상, 일반그릇에 생일상처럼 차려도 된다”

입력 | 2023-11-02 11:31:00

성균관, 제사 현대화 권고안 발표
“제사, 고인 기일 초저녁에 지내도 돼”
“축문 한글도 가능…사진 없으면 지방으로”
“성별 구분없이 주재…음식 준비는 다 함께”




갈수록 제사를 부담스러워하는 국민이 많아지자 성균관이 일반 가정에서 모시는 제사 음식을 대폭 간소화하라고 제언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위원회)는 2일 오전 10시경 국회의사당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통 제례 보존 및 현대화 권고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명문 종가의 진설(제사 준비 과정)을 참고해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忌祭)와 3월 상순 고조(高祖) 이하 조상의 묘에서 지내는 ‘묘제’(墓祭)의 제사상 진설 방식을 제안했다.

기제의 경우 밥·국·술에 과일 3종, 떡, 적(구이), 나물, 나박김치, 젓갈(식해), 식혜, 포, 탕, 간장 등을 곁들이는 것을 예시로 내놓았다. 묘제 진설로는 술, 떡, 포, 적, 과일, 간장을 올린 더 간략한 모델을 보여줬다.

위원회는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이라도 정성을 다하면 된다”며 “가정의 문화, 지역의 특성, 제사의 형식, 형편에 따라 달리 지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영갑 위원장은 “제사의 핵심은 돌아가신 분을 그리워하는 가족이 모여 안부를 묻고 화합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며 “제사상은 간단한 반상에 좋아하는 음식을 더 올리거나 생일상처럼 차려도 된다”고 부연했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통제례 보존 및 현대화 권고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1.02. 뉴시스

제사 절차에 대해선 제주가 향을 피우고 모사기에 술을 세 번 나눠 부으면 참가자가 다 함께 두 차례 절을 하라고 안내했다. 이후 술을 한번 올린 후 축문을 읽고 묵념한다. 그다음엔 참가자들이 두 번 절하고 상을 정리하며 축문을 태우고 마친다.

위원회는 “제사는 돌아가신 날의 첫 새벽(오후 11시∼오전 1시)에 지내야 하지만 가족과 합의해 돌아가신 날의 초저녁(오후 6∼8시)에 지내도 좋다”며 선택지를 다양화했다. 제사음식 준비 과정에서 여성의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가족 모두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다른 사항에 대해서도 형편에 맞게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뒀다. 축문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도 되며, 신위는 사진 혹은 지방을 이용해도 된다고 밝혔다. 부모님 기일이 서로 다른 경우에도 함께 제사를 지낼 수 있으며, 제기가 없으면 일반 그릇을 써도 된다고 덧붙였다.

위원회는 또 고인의 자녀가 협의해 제사 주재자를 정하되, 성별에 상관없이 가장 연장자가 맡아도 된다고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전했다.

이같은 제사 간소화 방안은 최근 설문조사 결과 등을 반영한 결과다. 지난 9월 20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55.9%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반응했으며 음식이나 형식의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44.9%에 달했다.

다만 위원회는 일반 가정의 제사를 간소하게 하는 것과는 별개로 전통 제례 보존 및 계승을 위해 종가를 중심으로 지켜온 제례 문화의 소실을 막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큰 공훈을 세워 영구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사람의 신위인 불천위(不遷位)를 모시고 지내는 제례에 대해서는 ‘세계인류 문화유산’ 또는 ‘국가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위원회는 건의했다.

이번 권고안 마련에 참여한 고혜령 뿌리회 회장은 “종손가 중심의 불천위 제례 보존을 위해 위원회, 종가, 학자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제례 문화 계승에 적합한 제도를 모색해 전통 제례의 현실적 계승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