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보자마자 “이건 사야 해!”를 외치게 만드는, 마음을 울리는 굿즈가 있다. 구매욕을 자극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높은 퀄리티, 뜻밖의 콜라보, 세계관 찢고 나온 듯한 생생한 구현,… ‘존재 자체’가 이유인 경우까지. 최근엔 다양한 제품이 캐릭터와 만나며 실용성까지 더해지고 있으니, 굿즈가 쓸모없는 아이템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특히 5-6년 전, 덕후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대란을 일으킨 굿즈가 있다. 의류 브랜드 스파오(SPAO)가 출시한 애니메이션 속 짱구가 입은 것과 똑같게 디자인한 잠옷이다. 해당 제품은 오픈 30분 만에 품절되더니, 서버마저 다운시켰다.
스파오에서 출시했던 짱구 잠옷_출처 : 스파오
성공적인 기획의 뒤엔 본인이 열혈 짱구 덕후인 기획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지금은 회사를 관두고 유튜버로 활약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영상 주제는 역시나 짱구와 애니메이션. 게다가 여전히 어른이를 위한 굿즈를 만들고 있다고. 짱구 굿즈에만 1000만 원을 넘게 썼고 없는 굿즈는 직접 만드는, 유튜버 빠퀴(박휘웅)다.
친구를 넘어 사업 파트너가 된 '짱구'
빠퀴의 유튜브 채널 홈
BRDQ. 애니메이션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가. 특별히 짱구가 ‘최애’인 이유가 있다면?
빠퀴(박휘웅). 기억이 닿는 때부터 덕질을 했다. 그냥 생활 그 자체였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 햇수로 치면 25년은 넘었겠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감정은 정말 단순한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 굳이 이유를 찾지 않듯이 그냥 짱구라서 좋아졌다. 요즘 말로 치면 ‘짱며들었다’라고나 할까. 어렸을 때 TV만 틀면 계속 나오던 짱구가 여전히 방영하고 있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롭다. 짱구 또래 나이에서 짱구 엄마 나이를 넘고, 지금은 짱구 아빠 친구가 됐다. 이 느낌이 참 묘하면서도 각별하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계속 보다 보니 친구처럼 정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지금도 짱구를 열렬히 좋아하는가.
이제 짱구는 내 친구를 넘어 사업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인생에서 뗄 수 없는 존재다. 지금도 다달이 짱구 관련 굿즈를 사고 있다. 그동안 짱구 굿즈에 쓴 돈이 1000만 원은 넘는다. 나는 '극단적 맥시멀리스트'다. (웃음) 안 나온 제품들은 직접 만들기까지 하니 훨씬 많아질 것이다. 나중에는 짱구 박물관이나 짱구 카페를 열어서 전시하고 싶다.
그동안 모아온 짱구 굿즈 일부. 가장 아끼는 굿즈는 94년에 일본에서 한정판으로 나온 짱구 세이코 시계다_본인 제공
짱구 잠옷, 퇴사 각오하고 기획했다?
첫 출시 이후 여러 계절 버전으로 출시된 짱구 잠옷_출처 : 스파오
스파오 재직 시절, 히트 상품 ‘짱구 잠옷’을 기획했다.
덕질의 끝판왕은 역시 손수 제작하는 것인 것 같다. 짱구 잠옷을 출시했을 때 ‘드디어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구나’는 생각에 완전체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제품 역시 100만장 이상 판매됐으니 당당하게 성덕이라고 말하고 싶다. 덕질로 시작해 고객을 만족시키고 돈까지 버는 경험은 언제든 짜릿하다.
당시 기획하게 된 배경은? 특히 상사를 어떻게 설득했는지가 궁금하다.
브랜드장님과 온라인 마케팅 팀장님 외에는 설득한 사람이 없다. 나는 사실 패션 본부 소속의 온라인 마케터였다. 스파오 소속도 아니고, MD도 아닌, 거기에 직급도 주임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기획 권한 자체가 없었다. 그 전에 '포켓몬GO' 게임 출시 당시 '이거다!'하는 생각에 포켓몬 콜라보를 반쯤 우겨서 진행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동시에 적도 많이 생긴 바람에, 미움도 많이 받고 협업도 어려워 퇴사하려 했다. 그래도 나가기 전에 좋아하는 애니 하나는 하고 싶어 막 우겨가며 짱구를 밀어붙인 거다.
처음 짱구 티셔츠를 출시했을 땐 반응이 크지 않았다. 이어 제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 잠옷을 제안했는데, 잠옷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없을 때라 정말 쉽지 않았다. 마음 맞는 디자이너와 동대문을 왔다 갔다 하며 직접 기획했다.
그렇게 딱 500장만 제작했고 배정된 마케팅 예산도 없었다. 다른 제품 찍다가 바닥에 두고 아이폰으로 한 장 찍어 올린 게 전부다. 근데 이게 예기치 않게 SNS에서 대박이 난 거다. 당일 좋아요만 10만개 이상 눌리며 서버가 다운됐고, 30분 만에 품절 됐다. 리오더는 5000장을 했는데 그것도 10분 만에 완판했다. 짱구 잠옷과 이어 출시한 해리포터 잠옷이 각 200억 매출을 냈으니 대박이 났다고 할 수 있다.
특급 승진에도 과감히 퇴사한 이유
현재 스파오는 '콜라보 장인'으로 불리고 잠옷은 스파오의 대표 상품이 됐다. 그는 주임, 대리, 과장 모두 특진했다_출처 : 스파오
흥행에 성공한 제품을 연달아 만들면서 특진해 어린 나이에 과장 직급까지 달았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하게 된 배경은?
회사 생활이 기본적으로 잘 맞지 않았다.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대리까지는 칼퇴는 기본에, 하고 싶은 대로 회사 생활을 했다. 그런데 과장부터는 회사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위치인 거다. 회사를 위해 후배를 육성해야 하고 가이드도 빡빡해지다 보니 흥미가 확 떨어졌다.
회사 생활을 그만두기까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커리어도 잘 쌓아온 편이고 스카웃 제의도 많이 받아, 직장인으로서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보장됐다고 생각했다. 유튜버로 부업도 해서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답게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로만 하루 종일 꽉 채워도 부족한 시간에, 좋아하는 일 하나를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 아홉 개 하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정했다. 물론 회사 생활이 잘 맞는 분들은 회사 생활을 추천한다. 회사, 사업 각 장단점이 너무 뚜렷한 것 같다.
퇴사 후 만든 ‘댄꼼마’는 어떤 브랜드인가.
어른이를 위한 캐릭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브랜드 이름은 페르소나인 어른이 ‘댄’의 쉼표라는 뜻으로, 쉼표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브랜딩 측면에서는 어른이의 쉼표(덕질)을, 상품 전개 면에서는 X에 치환되는 기호로, 콜라보레이션(예시: 댄X짱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른이들이 쉼표처럼 덕질할 수 있는 캐릭터 상품들을 출시할 예정이다.
회사 다니면서 크게 배운 것 중 하나가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만들어야 판매된다는 것이다. 나도 어른이고, 결국 다른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영어 이름인 DAN을 브랜드 페르소나로 만들었다. 인스타툰을 그려 세계관을 펼쳐 나가려 했는데 아직 거기까진 못하고 있다.
브랜드 페르소나 DAN_출처 : 댄꼼마
대기업에 있다가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며 상품을 만드니 더 어렵지 않나.
시작 전에는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차이는 모두 내 돈으로 해야 한다는 점과 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웃음)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밖에 없다.
이외에는 장점뿐이다. 계약부터 출시까지 필요한 실무만 할 수 있어 효율도 더 높고,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적다. 뭐든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모든 과정을 결정하고 터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기 부여도 된다.
스파오에 있을 때는 의류를 중심으로만 제품을 만들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카테고리를 다양화할 수 있어 아이디어 내기가 쉽다. 무엇보다 확실한 건, 이 모든 장점으로 인해 일하는 게 더 재밌다는 것.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퇴사에 대한 후회가 없다.
인터비즈 지희수 기자 heesu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