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美中정상회담 가능성, 미국이 더 적극적 바이든, 내년 대선 고려해 협력 메시지 낼 수도 韓,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역량 확보해야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
대한민국 외교는 안개 자욱한 길을 직진하고 있다. 주변은 천애의 절벽이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는 길을 거침없이 나서고 있다. 이 위험의 근원은 자유주의적인 미국 패권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기에는 요원하다는 점에 있다.
한국은 앞선 기존 질서 안에서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룩했다. 세계의 많은 국가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의 반열에도 들어섰다. 미국을 추종하면 안보와 경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과 서방은 수세로 전환하고 있다. 그 대신 중국과 러시아의 위세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거대한 중국의 도전에 직면한 트럼프 주변의 전략가들은 이분법적인 가치관에 기반하여 신냉전의 세계를 주창하였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러한 이분법적인 세계관으로 중국을 압박하려 하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더 이상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도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은 이 모든 분쟁에서 판의 기울기를 결정할 키를 쥔 국가가 되었다. 미국은 국력을 급격히 소진시키고, 동맹 체제를 혼돈에 빠뜨릴 이 양면 전쟁을 장기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3면 전쟁까지 발생하는 것은 악몽에 가까울 것이다. 미국은 이미 독일과 일본 등의 강력한 요구를 수용하여 기존의 탈동조화(decoupling)라는 대중 강공책 대신 한 걸음 물러나 위험분산(derisking) 전략을 수용했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 이러한 중국과 갈등을 완화하고 가교 역할을 하면서 미국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이다. 그러나 가치 외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중국과 갈등을 한껏 고조시킨 윤석열 정부와 외교 라인은 그러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대중국 관계에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헤징이 아닌 균형·동맹 전략을 온전하게 시행하고 있는 윤석열표 외교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려 하면서도 윤석열 정부가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모험주의보다는 ‘과학적 유물론’에 따라 생산력과 경제 관계에 집중하면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일대일로가 그 주요 정책이다. 이미 다수를 확보한 유엔을 수단으로 정치적 상부구조에 대한 변화를 장기간에 걸쳐 추진할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에 대해 바이든의 경쟁적 공존 전략과 트럼프의 신냉전 전략 사이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그 어느 쪽에도 부응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쟁적 공존을 돕기 위해서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신냉전 전략은 우리가 감당할 비용을 초과할 듯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안미경미(安美經美) 전략은 신기루처럼 일견 가까운 듯 보이면서도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다.
윤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에 의한 전통적인 안보 위기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 중국의 보복과 압박, 미국의 2차 제재, 일본의 수출 통제, 한국의 수출 부진과 무역 적자의 지속적인 증가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핵확장 억제를 넘어선 보다 적극적인 국방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전통적 안보 우선주의, 정치적 가치와 이념의 과잉화, 미국과 일본에 치중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배제하는 지나친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의 실현은 일방적인 동맹과 균형 정책의 추진보다는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 길을 통해서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미동맹을 지키고, 미국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윤석열 정부의 레임덕이 진행되면, 바로 한미동맹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