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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의 일편車심]현대차의 속도전 vs 도요타의 신중론

입력 | 2023-11-02 23:43:00


“우리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빨리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한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그룹 기술고문의 얘기다. 독일 BMW 출신으로 2015년 현대차그룹에 영입된 그는 2018년부터 현대차그룹의 차량 개발을 총괄하는 연구개발본부장을 지내다 1년여 전 독일로 돌아갔다.

김도형 기자

지금도 고성능 전기차 개발을 돕고 있는 비어만 고문은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 대응을 속도전으로 요약했다. 친환경차 대전환을 마주한 다른 기업들이 우선순위를 고민할 때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전기차, 전기차 모두를 최대한 빨리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우리가 해오던, 현대의 방식대로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서 오래 고민하기보다는 빠른 행동으로 대응하는 전략.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삶이 압축된 두 단어 ‘이봐, 해봤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보여준 ‘현대속도’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비어만 고문은 미래차 준비로 남양연구소의 프로젝트가 두 배 이상 급증하자 연구개발 시스템을 효율화하는 작업에 나섰다고도 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비롯한 핵심 프로젝트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려는 노력이었다.

도요타의 전기차 콘셉트카 ‘FT-3e’.

이처럼 새로운 도전에 즉각 응전한 한국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나라는 바로 이웃 일본이다. 세계 판매량 1위의 자동차 기업 도요타를 최근까지 이끈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얼마 전 도쿄에서 열린 모터쇼에 참석해 “사람들이 마침내 현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의 가파른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회의론까지 나오는 상황이 친환경차 대전환의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도요타는 최근 최고경영자까지 교체하면서 전기차 전환에 나섰다. 얼마 전에는 10조 원에 이르는 미국 배터리 공장 추가 투자도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 유럽, 미국은 물론 중국까지도 일찌감치 뛰어든 이 격전장에 일본은 두어 발 늦게 발 디뎠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도요다 회장의 이 말은 일본이 왜 전기차 대응에 늦었는지를 보여준다. 분산된 투자로 위험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 여기엔 전기차 시장 판도를 충분히 살펴보면서 준비해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세계 1위 기업의 자신감도 담겨 있겠다. 도요타는 충전 걱정이 없다는 장점을 앞세워 친환경차의 대안으로 새삼 각광받는 하이브리드차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도요다 회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질주하던 전기차가 과속방지턱 앞에 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각국에선 중국 전기차를 막아내기 위해 장벽을 쌓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자국의 차 산업에 과연 유리하냐는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전기차의 미래는 더욱 안갯속이다. 과감한 도전과 신중한 준비. 한일을 대표하는 두 기업의 전기차 대응은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과속방지턱과 안개를 통과한 뒤가 궁금하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