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300인 미만 연구개발(R&D)·건설·일부 제조업 등 특정 업종에 한해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 ‘주 69시간 근무’ 논란에 부딪쳐 멈춰선 근로시간 개편의 대상을 좁히고, 직종·업종별로 차이를 둬 노동개혁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려는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몇몇 업종을 우선 적용 대상으로 검토하려는 건 경직적 주 52시간제로 인한 어려움이 큰 부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소프트웨어 업체의 경우 개발 시한을 맞추지 못하면 사업에 타격을 받는다. 수주량, 계절에 따라 일감의 진폭이 심한 건설업이나 조선업, 에어컨 산업도 마찬가지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들은 현실적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지키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
급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초과근무 시간을 몰아서 휴가로 사용하게 되면 이런 기업들은 숨통이 트이게 된다. ‘기본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의 주 52시간제에서 1주 단위인 연장근로 관리기간을 월·분기·반기로 늘리는 개편안을 정부가 올해 초 내놨던 이유다. 초과근무 시간을 주 단위로 관리하는 건 선진국 중 한국이 유일하고, 대다수 나라들은 반년, 1년 단위로 관리해 기업의 인력 운용에 융통성을 두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흐름을 단기간에 뒤집긴 어렵다. 그런 만큼 갈수록 약화되는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되살리기 위해선 노동의 효율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 근무하더라도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해도 청년을 비롯한 근로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근로시간 개편은 성공하기 어렵다. 노동개혁 ‘2라운드’를 시작하기에 앞서 정부는 ‘결국 일 더 시키려는 꼼수’라고 생각하는 근로자들의 의심을 깨끗이 털어낼 실질적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