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나이라 데 그라시아 지음·제효영 옮김/376쪽·2만1000원·푸른숲
미국 해양대기청(NOAA) 소속 생태계 모니터링 연구자 자격으로 5개월간 남극에서 생활한 젊은 생물학자가 생태 관찰기를 풀어낸 에세이다.
저자는 남극 대륙 리빙스턴섬 시레프곶에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을 회고하며 “내가 가는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미국, 스페인,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를 옮겨 다니며 산 저자는 어디서든 ‘외국인’으로 여겨졌다. 눈 덮인 남극 대륙에서 턱끈펭귄, 전투펭귄, 남극물개와 첫 대면을 했을 때도 그는 익숙한 ‘낯섦’의 거리감을 마주했다. 하지만 저자는 얼마 안 돼 탐험과 연구 대상이던 남극이 더 이상 펭귄이나 물개의 터가 아닌 자신이 사는 ‘세상’ 그 자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관찰 대상에 불과했던 펭귄과 교감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위치 추적기를 부착한 펭귄 중 두 마리가 시레프곶에서 80km쯤 떨어진 킹조지섬을 빙 돌아서 이동 중이며, 또 다른 두 마리는 대서양으로 곧장 나아가 150km 넘게 이동한 사실을 파악하곤 “아이를 처음 대학에 보낸 부모들과 비슷한 심정”이었다고 고백한다. 또 펭귄의 식생활 표본을 얻기 위해 펭귄 식도에 호스를 밀어 넣어 모든 걸 게워 내게 만든 뒤 정든 펭귄을 학대했단 생각에 괴로워한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