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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리처드 도킨스에게서 책 추천을 받는다면

입력 | 2023-11-04 01:40:00

자신의 ‘최애 독서목록’ 소개
해박한 지식 없어도 술술 읽혀
칼 세이건 저술에 남다른 애정… 다양한 분야 한눈에 보는 재미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리처드 도킨스 지음·김명주 옮김/640쪽·2만8800원·김영사



리처드 도킨스는 책의 서문에서 “내가 수년 동안 감탄하며 읽은 책들의 머리말과 서문, 후기, 에세이, 모음집에 기고한 글, 추천할 만한(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책들에 대한 서평을 담았다. 한마디로 책에 대한 사랑을 담은 책이다”고 밝혔다. 김영사 제공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 그가 낸 책은 항상 반향을 일으켰다. 전공인 진화생물학부터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과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저작까지. 주제는 다양했지만 그가 쓴 책은 항상 학계와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 얘기다. 바로 그가 ‘책’을 주제로 쓴 책이다.

도킨스가 과학과 책에 대한 애정을 담아 그동안 감탄하며 읽은 책들에 대해 쓴 서문과 후기, 에세이, 서평, 대담이 담겨 있다. 2021년 도킨스의 80세 생일을 기념해 낸 책으로, 30대에 쓴 ‘이기적 유전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 50년간의 과학 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의 대중화,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해 온 도킨스답게 특유의 재치 있는 문장, 이해하기 쉬운 비유 등으로 풀어내 과학 지식이 없는 이라도 어렵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다.

책은 크게 6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의 첫 꼭지에는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과학계 인사들과의 대담이 등장한다. 칼 세이건의 후계자로 불리는 미국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과학 해설자이자 방송인 애덤 하트 데이비스 등이다. 데이브스와의 대화에서 도킨스는 “연주를 못해도 수준 높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듯이 과학자가 아니라도 높은 수준에서 과학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며 “과학을 음악이나 미술 또는 문학처럼 대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도킨스는 이 대담에 대해 “내 과학 인생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했다”고 고백한다.

도킨스는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코스모스’로 유명한 세이건의 책들을 특히 칭송한다. 그중에서도 반과학주의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책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히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잉크가 아까워 밑줄 긋기를 그만뒀다”고 할 정도다.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음을 밝힌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를 두고선 “세계 지도자들을 이 책과 함께 가둬놓고 다 읽을 때까지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고, 나머지 우리에게는 구원이 될 것이다”라면서 성경을 대체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극찬한다. 로렌스 크라우스의 ‘무(無)로부터의 우주’에 대해서는 “‘종의 기원’이 생물학 초자연주의에 가한 최후의 일격이었다면, 이 책은 우주론이 가하는 최후의 일격”이라고 밝히기도 한다. 생물학뿐만 아니라 천체학, 정치학 등 현대 지성의 흐름을 한 권에 모아 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칭찬 일색은 아니다. ‘통섭’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에 대해서는 그가 주장하는 ‘집단선택’ 진화 방식에 이론적 오류가 있다며 자연선택 이론과 맞세워 논증해 나간다. 과학자답게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도 격식 있고, 유머와 풍자를 놓치지 않는다.

반과학, 반지성주의 주장이 넘쳐나는 시대에 과학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는 이 책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