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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를 멀리 하지 마세요…가까이서 찍는 사진이 주는 느낌 [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3-11-05 10:00:00

백년사진 No. 42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의 사진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인터넷에 올리기로 스스로 했던 약속을 오늘은 좀 늦게 지키게 됐습니다. 전국의 사진기자들이 모이는 사진기자체육대회에 아침부터 참석하느라 글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해서라는 핑계를 대봅니다. 매년 가을 이맘때면 열리는 사진기자체육대회는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올해는 조금 달라진 풍경이 눈에 확연하게 띄었습니다. 체육대회라고 하면 운동경기가 좀 들어가야 맛인데 종목이 많이 줄었습니다. 특히, 20년 전에는 이 행사의 메인 종목이었던 축구 토너먼트가 없어지니 운동장 가운데가 비어 있었습니다. 운동장 사이드에 있는 배구장과 족구장에서만 경기가 치러졌습니다. 축구 종목을 소화할 신문사의 사진부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진기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신규 인원의 유입이 최근 십 여 년간 현저하게 줄고 있습니다)나타나게 된 변화입니다. 나이 든 사진기자만이 남는 것이 아니냐 하는 자조 섞인 탄식이 몇 년째 있었는데 올해에는 작년과는 다른 또 다른 현상도 한 가지 보였습니다. 2022년과 2023년에 사진기자를 시작한, 서울지역 사진기자들이 약 30명 가까이 있었습니다. 부스를 돌아다니며 동료 사진기자 선배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이색적인 풍경이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부터 신문사들이 증면을 하고 칼라지면을 만들면서 사진기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었는데 그 때 신문사에 입사했던 사진기자들이 작년과 올해 그리고 내년에 대규모로 정년퇴직하면서 나타난 현상일 겁니다. 아무튼 젊은 사진기자들이 체계적 선발 과정을 거쳐 현장으로 들어온 최근 상황은 고무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만, 사진기자의 충원이 서울의 신문사와 인터넷 매체에 집중되고 지역의 경우 다운 사이징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같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신문사 사진부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망원렌즈가 없던 시절 스포츠 경기를 어떻게 찍었느냐는 질문에 옛날 선배 중에 한분이 야구 경기를 예로 들며, 심판 옆에 붙어서 도루를 하는 사진을 찍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이야 취재진들이 망원렌즈를 갖고 선수들과 최소 10미터 멀리는 1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찍는지도 모르게 찍지만 예전에는 완전히 붙어서 찍었던 것입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100년 전 사진은 높이뛰기 장면입니다.
여기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앵글의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높이 뛰기 하는 선수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1923년 10월 29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훈련원에서 거행된 육상경기/ 1923년 10월 29일 동아일보




▶그런데 묘한 느낌이 듭니다. 바로 현장감이죠.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 전달됩니다. 아마 지금 고해상도 카메라로 저 앵글의 사진을 찍는다면 바를 넘는 선수의 긴장되고 애쓰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을 겁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사진이 어떤 조건에서 촬영된 사진인지 이해합니다. 바로 옆에서 작은 렌즈로 찍은 사진인지 멀리서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인지를 말입니다. 짧은 렌즈로 찍은 사진은 현장감을 주고 친밀감을 줍니다.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은 친밀하지는 않지만 객관적인 시선이거나 훔쳐보기라는 느낌을 줍니다.

▶현장감을 주기 위해 모든 카메라 기자들은 피사체 옆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할겁니다. 하지만, 매체가 많아진 요즘 그렇게 하다가는 아마 뉴스 인물들이 카메라에 얼굴을 다칠 수도 있고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기자들은 현장에서 서 있을 수 있는 위치가 지정되고, 피사체에 대한 근접 촬영은 불허되거나 아니면 극소수의 인원에게만 허용됩니다. 가령 스포츠 경기의 경우, ‘오피셜 포토그래퍼’가 근접 찰영을 하게 됩니다.

▶정치 현장, 특히 대통령의 행사 취재에서도 ‘오피셜’은 근접 촬영의 ‘특권(?)’을 갖습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추모식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사진들의 출처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대통령실 제공이었습니다.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이라면 홍길동 기자 또는 대통령실사진기자단이라고 표시되어 있었을 겁니다. 일종의 제공사진이 신문들 1면에 실린 것입니다. 가까이서 찍은 사진은 액션이 강해서 사진이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대통령 전속이 가까이서 찍는 사진과 출입기자들이 멀리서 망원렌즈로 촬영하는 사진의 느낌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전속에 비해 사진기자들은 피사체인 대통령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거나, 피사체가 좋아하는 앵글보다는 뉴스에 적합하고 독자들의 시선을 끌만한 순간을 포착하려고 합니다. 아무도 해석하지 않고 피사체의 마음에만 들면 되는 사진은 보도사진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최고 지도자의 주변에 사진가를 최소화해서 배치합니다. 사진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표정은 적절하게 포착됩니다만 사진의 소스가 하나인 현장에서 나오는 사진은 뭔가 부족해보입니다. 세련되지 않고 시대에 맞지 않은 느낌 같은 거 말입니다. 변화가 없기 때문이고 틀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사진을 생각해보시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결혼의식에 관련된 당사자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가족끼리는 공유하지만 남들은 관심주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만 나올 수 있게 통제하는 것으로는 좋은 사진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사진기자와 피사체의 거리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