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북한 땅굴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이 무력화해야 할 하마스의 땅굴이 북한의 기술로 건설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북한이 기술을 수출할 정도로 대단한 땅굴 건설 실력을 갖고 있는지 착각할지 모른다.
평양 지하철 노선도. 1987년까지 총연장 34km의 2개 노선과 17개 역을 만든 이후 경제난으로 연장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난제는 그뿐이 아니다. 숱한 버력은 어떻게 처리하며, 수십 km 밖에서 땅굴의 물을 퍼낼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양수기는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 군사분계선 이북을 손금 보듯 하는 우리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1983년 탈북해 땅굴 관련 증언을 남긴 신중철 대위 이후 3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더 왔지만, 땅굴을 파는 데 동원됐거나 또는 사돈의 팔촌 중에 관여했다는 증언은 없다. 한국에서 발견된 북한 땅굴 4개는 모두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1990년에 발견된 마지막 땅굴도 굴착 형태로 봐서 다른 땅굴과 건설 시기가 같은 것으로 판명됐다.
김일성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땅굴 때문에 고전하자 적의 배후에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파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북한이 판 땅굴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남방한계선조차 넘지 못하고 발각됐다. 가장 많이 내려온 것이 군사분계선에서 1.5km 내려왔다.
땅굴의 용도는 선제공격용이다. 북한이 남침으로 한국을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1970년대 중반까지였다. 이후엔 한미연합군과 격차가 너무 벌어져 선제공격으로 남침한다는 꿈을 접은 지 오래다. 금강산발전소 건설을 위해 45km의 도수터널을 판 것이 마지막 대규모 땅굴 건설이었는데 군단급 병력이 1996년까지 10년 동안 동원돼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겨우 완성했다. 북한의 땅굴 기술은 수십 년 전 수준에 멈춰 있다.
지난해 10월 김정은은 동서 대운하를 파겠다고 전 세계에 큰소리를 쳤지만, 실제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게 귀신도 모르게 서울 지하철까지 땅굴을 연결했다고 일각에서 두려워하는 북한의 진짜 실력이다. 오히려 최근까지 열심히 땅굴을 판 하마스가 북한에 땅굴 건설 비법을 전수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처럼 인구 밀집도가 높고 고층건물이 꽉 찬 도시의 하부에는 지하철 터널이 겹겹이 거미줄처럼 건설돼 있다. 고속터미널역처럼 이미 있던 지하 노선들까지 땅속에서 엮어 하나의 역으로 재창출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50km가 넘는 철도 터널도 건설사 한 곳만 들어가 41개월 만에 완공한다. 지금도 서울 지하 40∼50m 깊이에 최고 시속 200km로 열차를 달리게 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터널이 3개 노선이나 뚫리고 있다.
이런 우리가 아직도 망치와 정으로 갱도를 파는 북한에 신비감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땅굴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