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를 바다에 잠기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가 한 말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중동 국가에도 애물이었다. 이집트는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뺏겼지만 1979년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에서 시나이반도만 찾고 가자지구는 놔뒀다. 요르단도 서안을 그렇게 내다 버렸다.
▷이슬람 급진주의의 뿌리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에 있다. 헨리 키신저는 최근 저서 ‘리더십’에서 위대한 리더십을 보인 20세기 정치인 6명을 꼽았다. 그중 한 명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다. 이스라엘과의 평화의 이면(裏面)은 무슬림형제단과의 전쟁이었다. 사다트는 무슬림형제단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사다트의 뜻을 이어갔다.
▷무슬림형제단에서 비롯된 급진주의가 이슬람 신정 국가 건설에 성공한 유일한 곳이 이란이다. 이란은 레바논의 내전 상황을 틈타 헤즈볼라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는 하마스를 지원해 왔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중동전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내세운 이란과의 싸움이다. 그 대리전의 가장 잔혹한 판이 한 달 전에 벌어졌다.
▷시간은 늘 과거보다 현재의 승리다. 한 달 전 이스라엘이 입은 피해는 잊혀지고 지금 팔레스타인인이 입는 피해만 부각되고 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인심(人心)은 그렇게 흘러간다. 전 지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실시간 연결되는 오늘날에는 힘이 있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이 뜻대로 되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과거 중동전에서 마주하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는 과거 테러 집단의 수장으로 악명 높았지만 결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 건설에 나섰다. 아라파트가 세운 파타당의 노선만 따랐어도 가자지구 주민은 지금과 같은 곤경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타당은 부패로 얼룩졌다고 기피되고, 가자지구 주민들이 하마스에 표를 던져 집권의 길을 열어준 결과는 가혹한 생사의 위기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