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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듯… 동판화 역사를 바꾸다

입력 | 2023-11-06 03:00:00

렘브란트 & 칼 안드레… 대구서 만나는 두 거장의 특별한 美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展
자화상-풍경 등 120여점 전시… “현실 속 모습처럼 그 시대 묘사”
어미홀 프로젝트 ‘칼 안드레’ 展
강철판 21개를 나열한 ‘라이즈’… “녹슨 쇳내 속 감각 집중 경험”




렘브란트의 판화에서는 생생한 길거리의 일상 속 풍경과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염 난 늙은 남자’(1631년·위쪽 사진)와 ‘쥐 잡는 사람’(1632년). 대구미술관 제공

유럽 미술 거장 렘브란트 판레인(1606∼1669)의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전시가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했다. 미술관이 네덜란드 렘브란트순회재단과 벨기에 판화 전문 미술관 뮤지엄 더레이더와 협업한 전시다. 이 미술관에선 미국 미니멀리즘 예술의 대표 작가 칼 안드레(88)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획전도 함께 열리고 있다. 작가가 아시아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이다.





● 동판화의 역사를 바꾼 렘브란트

대구미술관 1전시실에서 열리는 2023 해외교류전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는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렘브란트의 동판화가 300여 점인 것을 감안하면 작품 수가 적지 않다.

작품들은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풍경 △습작 △인물·초상 등 7개 주제로 분류했다. 특히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 섹션에서 렘브란트가 인물 묘사를 생생하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자화상’에선 렘브란트가 자신의 멋진 모습뿐 아니라 편한 모자를 쓰고 웃거나,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인상을 쓰는 표정 등 여러 표현을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거리의 사람들’에선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 떠돌이 농부 가족 등 길 위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인간의 모습에 대한 현실적 탐구를 통해 성경을 다룰 때도 교리를 넘어 사람 이야기로 풀어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정희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다른 작가라면 ‘착한 사마리아인’을 주제로 여관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성경 속 이야기만 부각했을 텐데, 렘브란트는 우물에서 물을 긷는 여자, 볼일을 보는 강아지 등을 묘사해 현실 속 풍경처럼 연출했다”며 “그 시대 풍경을 사진을 찍듯 사실적으로 기록했다는 의미에서 전시 제목을 ‘17세기의 사진가’라고 붙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 붉은색 잉크와 검은색 잉크로 각각 찍은 작품 ‘의족을 하고 있는 거지’, 에칭과 드라이포인트(판면을 예리한 철침으로 긁는 기법) 등 다른 기법을 과감히 결합한 ‘얀 루트마, 금세공인’ 등 렘브란트가 새로운 기술을 실험한 흔적도 볼 수 있다. 이 학예연구사는 “일부 미술사가들은 렘브란트가 동판화의 역사를 바꿨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평가한다”며 “그러한 면모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3월 17일까지.





● 칼 안드레, 쌓아올린 향나무-나열한 강철판 작품 공개

금속 벽돌 나무로 빚은 미니멀리즘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칼 안드레 개인전. 왼쪽부터 서양 향나무 21개를 쌓은 ‘메리마운트’, 서양 향나무 24개를 직육면체 모양으로 쌓은 ‘7 할로 스퀘어’, 강철판 21개를 나란히 놓은 ‘라이즈’. ‘라이즈’는 철판 위로 관객이 직접 걸어볼 수 있다. 대구미술관 제공

칼 안드레 개인전이 열리는 대구미술관 어미홀은 미술관 중앙의 높이 18m, 너비 15m, 길이 50m 규모 공간이다. 이 전시는 동시대 미술 동향을 소개하는 2023 어미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안드레는 196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한편 현상학을 받아들여 ‘작품은 보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바가 중요하다’는 미학을 펼쳤다. 작품들은 나무 금속 벽돌 등 단순한 재료만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번 전시에선 서양 향나무 21개를 쌓은 ‘메리마운트’를 비롯해 ‘4번째 스틸 스퀘어’, ‘벨지카 블루 헥사큐브’ 등 산업 재료를 그대로 배치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강철판 21개를 나열한 ‘라이즈’는 관객이 위로 직접 걸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간이 흘러 녹슨 쇳내가 미세하게 풍겨오는 가운데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12월 31일까지. 미술관 입장료 700∼1000원.




대구=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