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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자 난민촌 공습은 명백한 전쟁범죄…탄압 멈추지 않으면 중동평화 불가능”

입력 | 2023-11-06 03:30:00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 인터뷰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2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주한이란대사관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의 뒤로 이란 국기,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호메이니와 현 최고 지도자 하메이니의 사진이 보인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탄압을 멈추지 않으면 중동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이 설사 하마스를 없앤다 해도 제2,제3의 하마스가 또 나올 겁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63)는 2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이스라엘이 피란민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촌을 거듭 공습한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라며 지난달 7일 전쟁 발발 이후 약 1만 명의 가자 주민이 숨지고 인도주의 위기 또한 고조된 것은 모두 이스라엘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쿠제치 대사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팔레스타인 민간인 보호에 나서야 한다며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진 가자지구 주민의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난민촌, 그리스정교회 소속 성(聖)포르피리오스 교회, 구급차 등 민간인 대상 시설을 거듭 공격하는 행위을 막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18일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대사와 만났고 이에 더해 쿠제치 대사의 발언도 들었다. 전쟁 후 주한 외교공관이 없는 팔레스타인 측의 입장을 꾸준히 대변해 온 이란, 이스라엘의 주한 대사 모두와 만난 언론은 동아일보가 유일하다. 4월 부임한 쿠제치 대사의 첫 국문지 인터뷰이기도 하다.






● 하마스 궤멸은 ‘헛된 꿈’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2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주한이란대사관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의 뒤로 이란 국기,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호메이니와 현 최고 지도자 하메이니의 사진이 보인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쿠제치 대사는 이날 인터뷰 내내 하마스가 선거로 가자지구 제1당에 오른 합법 정부임에도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부정하고 2007년부터 16년간 가자지구를 봉쇄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 민간인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이것이 이번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가자지구에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희망을 가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청년이 많다”며 가자 주민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하마스 궤멸을 논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가 미국과 이스라엘과 맺은 ‘오슬로 평화 협정’이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고 이스라엘 측을 비판했다. 이후 이스라엘이 협정을 지키지 않고 가자지구를 탄압했으며 이에 가자지구 주민 또한 무력 투쟁만이 이스라엘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게 됐다는 것이다.

쿠제치 대사는 이스라엘 일각에서 “하마스가 붙잡은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을 데려오기 위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하마스 측에 주자”는 여론이 있을 정도로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내부 여론도 좋지 않다는 점을 거론했다. 네타냐후 정권이 지지율을 위해 내내 극우 행보를 계속한 것이 문제라는 취지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곳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는 점도 비판하며 “이 곳이 제2의 가자지구가 될 여지가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 서방 이중잣대와 편파보도 심각
쿠제치 대사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서방의 이중잣대와 편파 보도가 심각하다고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서방 언론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용인한다”며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 또한 실상에 비해 훨씬 적게 보도되고 있다고 했다.

이란이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것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를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은 팔레스타인에 ‘결례’일뿐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탄압을 흐리기 위한 용도”이며 이스라엘에만 이익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도와 이번 전쟁에 참전할 가능성에 대해 묻자 그는 “헤즈볼라 지도부는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킨다. 헤즈볼라의 참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참전한다면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의 참전일 것”이라고 논평했다.






● 한-이란 1000년 교류, 협력 더 강화해야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는 “한국과 이란의 교류 역사가 1000년이 넘는다”며 많은 천연 자원을 보유한 이란과 산업 선진국인 한국의 협력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국과 이란의 교류 역사가 1000년에 이른다며 양국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란의 ‘쿠쉬나메(Kush Nama)’ 서사시에는 멸망한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자가 신라까지 왔으며 신라 공주와 혼인을 했다는 내용이 존재한다. 신라 유적에서도 페르시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 여럿 발견됐다.

쿠제치 대사는 “이처럼 양국 관계는 1000년 이상을 이어온 관계이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도 매우 좋았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제재, 이란산 원유 판매대금의 한국 동결 등으로 잠시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 회복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한국에 동결됐던 이란산 원유자금 문제가 해결돼 윤석열 대통령께 감사하며 개인적으로도 영광”이라고 했다. 이 자금은 현재 한국에서 카타르 은행으로 이전된 뒤 미국이 다시 동결한 상태다.

한국 내 동결 기간 중 환차손, 이자 등으로 이란이 약 15%의 손해를 봤으며 이란 일각에서 이 손해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양국 협력이 강화되면 그 이상의 혜택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란이 원유, 천연가스, 리튬 등 각종 자원을 보유했고 약 8700만 명 인구의 대부분이 젊은 층이어서 산업 선진국인 한국과의 협력 여지가 많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우수한 전력 기술을 공유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한국 대통령의 이란 방문이 없었다며 윤 대통령의 방문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란이 ‘한반도의 비핵화’(한국, 미국 등은 ‘북한의 비핵화’라고 표현)를 지지하며 서방과의 핵합의를 복원하기 위한 자국민의 열망도 높다고 소개했다. 그는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를 막을 조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이란의 핵합의 복원 추진이 한반도에도 ‘역할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많은 한국 국민이 이란을 직접 방문하기를 기대한다”며 “이란에 온 모든 사람들이 ‘오기 전 걱정도 있었지만 실제로 와 보니까 너무 좋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1960년 테헤란 출생
1988년 테헤란대 경영학과 졸업
시리아, 레바논, 나이지리아 등에서 근무
2023년 4월~현재 주한 이란 대사
토르 주한 대사 “이스라엘, 하마스 제거해도 가자 재점령 안할 것”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1018/121718511/1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