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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비관 자살, 쉽게 말하지 마세요”…서울대생 정신건강 살피는 의사[죽고 싶은 당신에게]

입력 | 2023-11-06 14:00:00


[8회] 김은영 서울대 의대 교수


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진료를 보러 온 학생에게서 간밤에 스누콜*에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말로 표현 못 할 시커먼 울음이 확 올라오면서 순간 호흡이 멈춘다. 공포영화처럼 죽음이 갑자기 코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내 죽음이 두렵거나 무섭게 느껴진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타인의 죽음은 공포다. 죽고 싶다는 말을 거의 매일 듣는데 절대로 무뎌지지 않는다.”
―김은영 외 8인,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중에서
*스누콜: 자살 충동과 같은 응급상황에 이용할 수 있는 서울대 24시간 심리상담센터

대학 중간고사가 있는 4월, 고시 2차 시험이 끝나는 6월이 되면 한 번 더 마음을 다잡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있다. ‘죽고 싶다’면서 진료실을 찾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아져서다. 서울대 정신건강센터에서 학생들을 진료하는 김은영 서울대 의대 교수 이야기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서울대생이 무슨 걱정이 있어?”, “성적 때문에 그렇게 힘들면 그냥 학교를 그만두면 되는 것 아니야?”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0대 초반 청년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납작한 시선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2일 서울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의 연구실과 진료실은 서울대 학생회관에 있다. 학생회관에 들어서자 큰 거울 앞에서 춤 연습을 하는 학생들이 보였고 동아리방 밖으로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활기찬 캠퍼스에서 조용히 진료실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서울대 정신건강센터의 김은영 서울대 의대 교수.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불안의 시대를 사는 대학생들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인가요?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무엇보다 불안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요.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저도 ADHD인 것 같다’며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불안장애인 경우가 많아요.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불안장애 증상 중에 하나거든요.”

-대학생들이 왜 그렇게 불안에 시달릴까요?
“원래 전통적인 의미에서 대학은 ‘유예기’에요. 대학에서 이것저것 도전하고 경험하면서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탐색한 뒤에 성숙한 시민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거죠.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지금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이런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요.

특히 대부분의 서울대 학생은 신입생 때부터 완전히 ‘번아웃’ 상태예요. 고등학생 때까지 온 가족이 나서서 모든 걸 갈아 넣어 딱 입학하잖아요?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제발 좀 쉬고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냥 쉴 수도 없잖아요.
“맞아요. 거기서부터 불안이 시작돼요. 쉬고는 싶은데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생기거든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또 일단 잘하기는 해야겠으니 그야말로 미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극도의 무기력함에 빠지는 학생들도 많아요. 아예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거예요.”

-서울대생 중에도 은둔형 외톨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있어요. 어렸을 때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엄청나게 똑똑한 친구들이에요. 은둔형 외톨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높다는 거예요. 그런데 학교에 와보니까 나보다 뛰어난 친구들도 있고, 친구들은 다들 부지런히 뭘 하고 있고, 대인관계도 원하는 대로 안 풀리니까 그냥 집 밖으로 안나와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너무 크니까 아예 회피하는 겁니다.”

-그 간극은 왜 생기는 건가요?
“이건 서울대생만의 문제도,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에서 청년 은둔형 외톨이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어요. 지금은 저성장 시대고, 계층 간 이동 사다리도 사라진 사회잖아요. 그런데 고성장 시대를 살았던 청년 세대의 부모들은 노력해서 무언가 성취를 얻는 데 아주 익숙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매우 이상적인 목표를 심어주고 때로는 그걸 강요해요. 그러니까 현실은 굉장히 좋지 않은데 목표는 굉장히 이상적인 상태로 성장하는 거예요.”

-그 간극 속에서 좌절에 빠지는군요.
“맞아요. 한 걸음 떼서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소위 말해서 엄청난 ‘현타’가 오고 불안하고 두렵거든요. 집으로 완전히 숨어든 학생에게 아주 작은 성취부터 해보자고 제안하면, 고급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해요. 실제로 그 학생은 그 번역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돼요. 그런데도 ‘나는, 내 자녀는 이 정도를 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 “왜 살아야 하는지에 집착 마세요”
-그동안 만났던 학생 중에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자살 사고가 심한 학생이 있었어요. 진료 시간마다 저한테 물었어요. ‘제가 왜 살아야 하는데요?’ ‘저는 죽을 건데, 선생님은 왜 저한테 죽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라고요. 매번 공격적으로 태도로 따지듯이 물었어요.”

- 마치 ‘그만 살아도 된’는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 같습니다.
“그 학생은 저도 잘 모르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곤 했어요. 저도 매번 말문이 막히고 무척 힘들었죠.”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사는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 따지고 들면서 토론하면 답이 없어요. 중요한 건 도대체 무엇이 그 학생을 삶의 의미에 그렇게 집착하면서 매 순간 죽음을 떠올리게 했는지입니다. 그걸 들여다 봐야 해요.

사람들에게 죽음의 의미는 다 다르거든요. 누군가는 너무 화가 나서 복수의 의미로 죽고 싶어 하죠. 어떤 사람들은 신체적인 고통이 심해서 그 고통을 제거하려고 죽음을 결심해요. 실패하거나 낙오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음을 떠올리기도 하죠. 서울대 학생들이 자살을 하면 ‘그냥 학교를 그만두면 되잖아. 이미 똑똑하니까 다른 걸 해도 먹고 살 수 있잖아?’라고 단순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이렇게 살면 내가 어차피 실패한 낙오자가 될 텐데, 그렇게 될 자기 자신을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가끔 들려오는 성적 비관 자살도 떠오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아이고, 공부 못한다고 저렇게 힘들어해? 성적이 뭔데?’라고 쉽게 말지만, 제가 보기에는 대학에서의 성적이라는 건 고등학교 때의 성적과는 의미가 굉장히 달라요. 고등학교 성적은 노력 대비 성과가 뚜렷하지만, 대학 성적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영향을 미쳐요. 스스로 일상을 잘 관리해야 하고, 다른 친구들과 협업할 줄 아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학비도 안정적으로 뒷받침돼야 해요.

이렇게 지적인 능력 외의 요소들이 집약된 성적이라는 것의 편차가 커질수록 학생들은 무기력함을 많이 느껴요. 성적에 대한 압박 자체가 다방면에서 스스로 이상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으로 느껴지는거죠. 그래서 성적 비관으로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단순히 그 학생이 똑똑하고 멍청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 “자기 자신을 신생아처럼 돌보세요”

-불안에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하나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법을 연구해 보자고 해요. 내가 무엇을 할 때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느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지 그 감각을 익히는 것부터가 시작이거든요. 많은 학생이 어떨 때 내가 가장 편안하고 나른하고 행복한지 잘 몰라요. 항상 긴장하고 불안해하면서 ‘내가 지금 정신 팔 때 아니다’ 하면서 자신을 다그치니까요. ”

-어떻게 하면 그 감각을 스스로 찾을 수 있나요?
“예를 들어서 지나가다가 노란색 은행잎을 봤는데 순간 미소가 지어졌다면 그 몇 초의 시간을 기억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그냥 살짝 웃고 지나가는 게 아니고요. 내가 그 순간에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는 걸 인지하고 그런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늘려보는 겁니다.”

-하나의 정답은 없네요.
“많은 학생들이 딱 떨어지는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장 뭘 하면 좋아지는지 알려달라고 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우리는 신생아를 돌보듯이 자신을 돌봐야 해요. 아기를 키울 때 이 아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동요도 틀어주고 클래식도 틀어주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가 도대체 뭘 좋아할까’ 하는 호기심 어린 관점으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죠.”

정신질환을 앓는 학생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질환 예방과 정신건강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대학 내 전반적인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분야를 ‘대학정신보건’이라고 한다. 대학정신보건은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대학 내 총기사고나 약물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대학마다 정신과 의사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고용해 대학 내에 의원을 차린 학교가 서울대와 KAIST(한국과학기술원), UNIST(울산과학기술원) 3곳뿐이다.

-왜 대학생을 진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됐나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펠로)를 하면서 서울대 정신건강센터에 파견을 나와 근무한 적이 있어요. 저도 20대 초반에 힘든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 이런 도움을 받았다면 그 시절을 훨씬 더 단단하게 보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생각이 가장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의 대학생들은 청소년의 연장선상에 가까워요. 학술적으로도 요새는 생물학적인 연령보다 5살 정도 더 정신적으로 미숙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스무살이면 정신적으로는 중학교 2학년 15살 정도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대학생을 진료한다는 건 ‘발달의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뿌듯하기도 합니다. 신입생 때 너무 불안정하고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성숙한 모습으로 졸업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뻐요. ”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우수한 20대 초반의 청년들을 진료하는 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서울대 학생들은 졸업 후에 사회지도층이 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학생들이 20대 초반에 스트레스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나 자신과 타인을 소중하게 돌보는 법을 잘 익히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거나 심지어 굉장히 왜곡된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갑질 같은 거죠.

지금 무언가 어려움이 있어서 저를 찾아온 학생들이 나중에 훨씬 더 건강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추구할 수 있게끔,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어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죽고 싶은 당신에게’ 시리즈의 다른 기사들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30000000942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