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재 ‘김치공장 블루스’ 저자
지난달에 내가 일하는 김치공장 생산라인에 계시던 여사님 5명이 사표를 냈다. 그중 가장 어린 여사님이 일흔하나. 현장에 가면 언제나 꼿꼿한 허리로 포기 양념소를 넣으며 반겨주시던 분들인데 그만큼 마음이 텅 비는 것 같다. 우리 공장의 온갖 특수 김치를 책임지는 현 반장님도 어느덧 예순을 넘기셨다. 김치공장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의 걱정은 한결같다. “이제 어느 젊은 사람이 김치를 담글까.”
‘김포족’, 김장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한다. 김치공장에는 호재처럼 들리는 뉴스다. 포장김치 판매량이 사상 최대라는 기사도 넘친다. ‘김모족’도 늘었다. 김장을 모르는 사람들 말이다. 필자는 김치공장 사장의 딸이다. 김포족, 김모족이 많아지면 김치를 사먹는 사람이 늘 테니 기분이 좋아야 할 것 같지만, 되레 걱정이 되고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김치를 집마다 담그던 시절이 있었다. 어른들은 시간을 견디는 일의 선수였다. 밤새 찹쌀을 불려 찹쌀풀을 쑤고, 겨우내 먹을 김치를 위해 여름부터 씨앗을 심었다. 반년 이상의 시간을 품은 채소들이 10여 시간의 절임을 거쳐 김치가 된다. 완성된 김치는 또 몇 개월의 시간을 견뎌야 맛이 난다. 어젯밤 안쳐둔 쌀이 내가 먹을 밥이 되고, 1년 전 담가둔 김치가 훌륭한 묵은지가 되는 것처럼 시간의 열매를 반복해서 수확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다.
식사도 그렇다. 전기밥솥의 13분짜리 ‘백미 쾌속’ 코스도 견디지 못해 즉석밥을 돌린다. 사무실을 나서면서부터 배달앱을 열어 음식이 집에 먼저 도착할 수 있도록 주문한다.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상에는 감히 내지 못할 정크푸드들을 본인 입안으로는 밀어 넣고, ‘위장 폭행’에 가까운 먹방 콘텐츠를 시청한다.
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시간을 아낀다면서, 스스로를 아끼는 시간까지 줄여버린 건 아닐까?’ 먹는 것은 비단 생존의 수단만은 아니다. 한 접시 한 접시 공을 들여 먹는 마인드풀 식사법, 소소한 제철 밥상이 나오는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영화가 눈길을 끄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식사는 나를 돌보는 행위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잡곡을 불려 알곡 하나하나의 식감을 느끼는 사람들, 좋아하는 그릇에 좋아하는 제철 과일을 담아 좋아하는 계절을 한껏 즐기는 사람들의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곧 입동이다. 옛날 사람들은 입동을 기준으로 김장을 준비했다. 하루 40t의 포기김치는 만들어도, 막상 반 포기의 김치도 직접 담글 줄 모르는 필자도 이번 입동에 나만의 김치를 만들어 보려 한다. 내 레시피가 맛있는지는 시간이 증명하겠지. 김포족·김모족 중 몇이라도 올겨울 자신만의 김치를 만들어 보기를, 느긋하게 정성 들인 집밥을 누려 보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