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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고용 활성화 위한 새 제도와 관행 마련할 때[동아시론/최영기]

입력 | 2023-11-06 23:45:00

고령자 경제활동, 연금 재정과 노인복지에 효과
日처럼 고용 연장하며 재고용 협상도 필요해
임금, 직무체계 바꾼 ‘세대 상생형’ 정책 필요하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정년 연장은 최근 노동계의 가장 큰 관심 사항이다. 현대차·기아 노동조합을 비롯한 힘센 노조들은 매년 교섭 테이블의 단골 메뉴로 정년 연장을 올려왔고 한국노총은 9월 국민청원 형태로 65세 정년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도 정년 연장의 득실을 따져볼 것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그들은 60세 정년 의무화를 공통 공약으로 내걸었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여야 합의로 뚝딱 해치운 경험이 있다. 전문가의 충분한 검토나 폭넓은 공론화도 없이 서둘러 내린 정치적 합의라서 노동시장에는 큰 충격이었다. 그 이후 50대 근로자의 인사관리는 큰 혼란을 겪으며 임금피크제와 직무 전환, 조기퇴직과 재취업 등으로 고용 사정은 천차만별이고 삶의 질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60세 정년 연장이 노동시장에서 그대로 실행되지는 않고 있다.

통계청 조사로는 60세 정년까지 채우는 근로자에 남녀 차이가 있지만 10명 중 한두 명밖에 안 된다. 이런 현실에서 65세로의 정년 연장은 너무 나간 주장 같지만, 연금 수급 연령과 퇴직 시기는 맞춰야 한다는 노동계의 요구는 너무나 당연하다. 정부나 기업도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1980, 90년대 고도성장기를 이끌어 왔던 50, 60대 인력이 계속 경제 활동을 하면 여러모로 득이다. 우선 연금 재정 안정에 도움이 되고 노인복지 수요도 줄일 수 있다. 인력 공급을 확대해 격화되는 구인난을 완화할 수도 있다. 50세 전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년 가까이 저임 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하는 지금의 고용 관행은 모두에게 손해다.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 60세 은퇴는 이제 사치인 셈이다. 65세로의 정년 연장은 아니라도 65세까지 고용은 연장될 수 있는 제도와 관행, 기업 문화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인천대 김동배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이미 60세 이후까지 고용을 연장하는 새로운 관행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도 60세 정년은 법적 의무지만 그 이후 65세까지는 고용 연장 의무만 있다. 정년 연장과 정년 폐지 모두 가능하지만 80% 정도가 재고용 형태로 고용을 유지한다. 이 경우 임금과 근로조건, 직무와 직책을 새로 정한다. 연봉을 초임 수준으로 낮추기도 하는데 우리도 당분간 이런 선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65세 또는 70세까지의 고용 연장을 새로운 관행으로 정착시키려면 정부와 노사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노사정이 각자의 요구만 앞세우다 보면 말만 무성하고 아무것도 못 한 채 5년, 10년을 보낼 수 있다. 우선 정년 연장을 법으로 의무화해도 시장의 고용 관행이 그대로는 따라가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턱대고 정년만 연장하다간 노동시장의 격차는 더 커지고 청년 고용은 위축될 수 있다. 현실적인 절충은 65세까지 고용 의무를 부과하더라도 근로계약을 다시 쓰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연봉과 근로 시간, 직무와 직책을 조정해 나가는 고령자 고용 관행을 새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근로자는 연봉과 근로 시간을 줄여가며 점진적 은퇴와 워라밸을 설계하는 한편 기업은 능력과 실적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하고 책임을 줄여주는 합리적 인사관리가 필요하다.

정년 연장 문제는 노사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변화이기 때문에 충분한 전문가 토론과 폭넓은 공론화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50대 조기퇴직과 고용불안을 재촉하는 제도와 관행, 기업 문화를 혁신하면 좋을 것이다. 고령자 고용의 가장 큰 걸림돌은 생산성과 임금의 괴리다. 이를 줄이려면 임금과 직무체계를 바꿔야 한다. 고령자 고용 안정을 위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공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이나 하청 그리고 재취업을 원하는 고령자의 눈으로 보면 연공 임금체계는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이 기회에 세대 상생형의 임금·직무체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정년과 연금 수급 시기를 맞추기 위한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노총도 입법청원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여론에 호소하고 정부에 능동적인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미루고 있는 것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최대 노동단체로서 총선 시기에 정치적 계산을 할 수는 있겠으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자신들의 정책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더 유력한 수단은 사회적 대화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고령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도 다니던 직장에서 일을 줄여가며 명예롭게 은퇴하는 게 최선이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