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적 흉악범에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필요하지만 사형제 존폐와 함께 논의돼야 논란의 소지 없을 것
장택동 논설위원
“병적인 집착과 광기에 이른 상태에서 일면식도 없던 피해자의 여동생과 모친, 피해자에 대한 살해 범행을 이어 나갔는바… 참작할 만한 사정이 전혀 없고 앞으로 교화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이른바 ‘세 모녀 살해 사건’의 범인 김태현에 대한 판결문의 일부다. 그는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피해자가 연락을 거부하자 두 달 동안 스토킹하다 집에 침입해 세 명의 목숨을 잔혹하게 빼앗았다.
전국에는 김태현을 비롯해 살인이나 그에 버금가는 중범죄를 저지른 1300여 명의 무기수가 복역 중이다. 귀가하던 여성을 납치 살해한 뒤 시신을 358조각으로 훼손한 오원춘, ‘계곡 살인’의 이은해와 ‘신당역 살인’의 전주환 등이 포함돼 있다. 법원이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수감 기간이 최장 50년인 유기징역보다 무겁게 처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무기수는 수감된 지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된다. 김태현은 18년 뒤, 오원춘은 9년 뒤에는 풀려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2015∼2022년 119명의 무기수가 가석방됐다. 반면 징역 42년형을 받은 ‘n번방 사건’ 조주빈의 경우 최소 32년을 복역해야 한다. 징역형은 형기가 10년 이상 남아 있으면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생명권을 빼앗겼고 유족들은 끔찍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게 사법적 정의에 부합하나. 응보(應報)는 현대에서도 형벌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또 석방된 무기수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기징역이 선고된 살인범이 가석방된 뒤 제보자의 아들을 살해하려다가 붙잡히는 등 실제 사례도 적잖다.
다만 실질적 사형폐지국인 한국에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지는 짚어봐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사형이라고 쓰고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라고 읽는다’고 말한다.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26년간 사형은 본래의 의미가 아닌 절대적 종신형으로서 기능을 해왔다는 뜻이다. 이를 그대로 둔 채 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하면 사실상 내용이 같은 최고형벌이 두 가지 존재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영국처럼 사형제를 폐지하고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방안이 있다. 국내 여론도 긍정적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가 대체형벌 도입을 전제로 한 사형제 폐지에 찬성했고, 이 중 79%는 대체형벌로 절대적 종신형이 적합하다고 답했다. 반면 미국 텍사스, 플로리다주 등에서는 절대적 종신형을 두면서도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사형-절대적 종신형-상대적 종신형 순으로 처벌의 강도를 구분하고 있다.
현 정부는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고, 사형 집행에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상 유지’로 사형에 관한 논란은 피하면서 절대적 종신형에 집중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형벌 체계에 부조화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사형제 존폐와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논란의 소지를 남기지 않고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