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조선현판’ 특별전 민간 현판엔 옛선비들 인연 담겨
만년의 추사 김정희가 현판에 걸기 위해 쓴 글씨 ‘端硯竹爐詩屋(단연죽로시옥)’. 중국 단계 지역에서 난 좋은 벼루와 차 끓이는 대나무 화로, 시를 지을 작은 집이 있으면 족하다는 의미를 담았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端硯竹爐詩屋(단연죽로시옥)”
제주 유배 생활을 마친 만년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한강 노량진이 보이는 용산 강마을에 머물던 시절 현판에 새기기 위해 쓴 글씨다. ‘중국 단계(端溪) 지역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벼루와 차를 끓이는 대나무 화로, 시를 지을 수 있는 작은 집’이라는 뜻으로,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여생을 즐기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다. 주어진 상황에 자족하며 살아가는 노선비의 마음이 전해진다.
국립대구박물관은 궁중과 민간 현판을 아울러 조선의 현판 114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나무에 새긴 마음, 조선 현판’을 7일 개막한다.
영조가 1744년 써서 국가 재정을 관리하던 호조에 내린 현판. ‘均貢愛民 節用畜力(균공애민 절용축력)’은 ‘조세를 고르게 해 백성을 사랑하고, 씀씀이를 절약해 힘을 비축하라’는 뜻이다. 현판의 네 모서리에 용머리와 봉황 머리 모양 조각을 달았고, 테두리엔 꽃무늬를 장식했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정조(1752∼1800)는 ‘萬川明月主人翁(만천명월주인옹, ‘온 시냇물에 비친 밝은 달의 주인’이란 뜻)’이라는 호를 정하게 된 이유를 현판에 적어 창덕궁 존덕정에 내걸었다.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이상적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정조의 뜻이 담겼다.
고종(1852∼1919)은 자신이 머물던 경운궁(현재의 덕수궁) 즉조당에 1905년 ‘慶運宮(경운궁)’이라고 쓴 현판을 내걸었다. ‘경사스러운 운수가 가득한 궁’이라는 뜻으로, 국운이 위태롭던 때 나라의 안녕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민간의 현판에선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등의 인연을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1705∼1777)가 아들 이긍익(1736∼1806)의 서실(書室)에 걸기 위해 손수 쓴 현판 ‘燃藜室(연려실)’이 대표적이다. ‘명아주를 태우는 방’이라는 뜻으로 중국의 역사가 유향이 밤늦도록 나무를 태워 가며 역사 연구를 한 끝에 대가가 됐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아들이 훌륭한 역사가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을 새긴 것. 이긍익은 훗날 조선의 역사를 42책에 걸쳐 기록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펴냈다.
자연 풍경과 어우러진 정자의 현판도 볼 수 있다. 경북 안동 풍천면에 있는 ‘翠潭亭(취담정)’ 현판은 잔잔한 연못 풍경을 형상화한 미디어아트와 어우러져 관람객을 맞는다. 취담정은 ‘맑고 푸른 연못’이란 뜻이다. 현판 아래에 한자의 뜻과 그 유래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풀어 해설했다. 내년 2월 12일까지. 무료.
대구=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