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분석가 비온은 솟구쳐서 뿜어져 나오는 아기의 욕망을 엄마가 자기의 마음에 잘 받아들여 소화시켜서 돌려줘야 아기의 마음이 건강하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엄마들이 들으면 크게 놀랄 일이지만 이유식이 마땅찮던 시절의 아기들은 할머니가 입안에서 직접 씹어서 부드럽게 반쯤 소화시킨 음식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
집단의 변질은 세 가지 방식으로 서서히 은밀하게 진행됩니다. 우선, 지도자에게 어린아이처럼, 지나치게 의존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기보다는 기대어서 성장하고 보호받으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경우는 세상을 바꾸고 자신들을 구원해 줄 지도자가 안에서 나타나기를 갈망하고 추앙하는 방향으로 집단이 움직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외부에 공격할 적을 내세우고, 공격과 후퇴를 말과 행동으로 반복하면서, 거칠게 흔듭니다.
원래는 해야 할 일을 합리적으로 하려고 의도했던 집단도 구성원들의 무의식적 욕망이 침투하면 변질됩니다. 집단적 마음 상태를 공유해서 확신으로 포장하면 힘 있게 분출되면서 파괴력을 과시합니다. 세 가지 마음 상태를 집단이 오가면서 움직이지만 경험에서 배우지는 못합니다. ‘확신’은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될수록 굳어지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믿음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다 바꿔줄 것으로 믿고 의지해 온 지도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도 눈을 감습니다. 여전히 그 사람이 집단 내의 갈등을 처리하고 집단이 해체되는 위기를 막으리라고 믿습니다. 지도자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서 자신이 결국 그 사람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들어도 고개를 저으며 회피합니다.
변질된 집단은 가치관이 이미 왜곡되어 있어서 위기가 닥쳐도 지도자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의존과 추앙의 대상으로 유지합니다. 오히려 악마화할 바깥 상대를 만들어서 공격의 에너지를 외부로 돌립니다. 자발적인 선택들로 보이나 무의식에 휘둘리는 겁니다. 집단의 흐름에 사로잡히면 현실 판단이 작동을 멈추어서 깨닫지 못합니다.
살아 있는 누구도 생각을 멈추지 않습니다. 생각의 틀을 내 생각으로 채우는지, 아니면 남의 생각을 그냥 주워 담고 있는지는 전혀 다릅니다. 숙성된 내 생각으로 채우면 의견이 되고, 성급하게 남의 생각으로 채우면 선입견이나 편견일 확률이 높습니다.
윌프레드 비온은 어린 나이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탱크를 몰며 싸웠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남의 생각을 명령으로 받아 수행해야 하는 집단을 떠나 내 생각, 혼자의 힘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