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한 달을 넘긴 가운데 이스마일 하니예 정치 지도자의 부패 의혹에 대한 서구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주민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리지만 난민 출신인 그가 가자지구의 관세 통제권을 장악해 부호가 됐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
가자 이슬람대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 ‘무슬림형제단’과 이를 이끄는 아흐메드 야신을 만났다. 1987년 이스라엘의 압제에 항거하는 대대적인 봉기, 즉 제 1차 ‘인티파다’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야신은 무력 투쟁을 천명하며 하마스를 설립했다. 이런 야신을 도우며 두 차례 투옥됐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난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2009년까지만 해도 그 자신 또한 출생지 샤티 캠프에서 살았던 하니예가 무슨 수로 이 돈을 벌었을까. 그의 부패 의혹을 폭로한 매체들은 하나같이 그가 이집트에서 가자로 들여오는 상품에 20%의 세금을 물리고 암시장에서 밀수 수수료까지 거둬 들여 떼돈을 벌었다고 전했다.
모든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40만 명 가자 주민의 약 3분의 2가 빈곤 상태인데 그 지도자가 가자에 머물지 않으며 조(兆) 단위 재산까지 보유했다는 의혹에 직면한 것은 석연치 않다. 그 부(富)의 원천이 고통받는 가자 주민의 푼돈이라면 더 그렇다.
하니예 외에 다른 하마스 지도자도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다 이스라엘과 서방의 가짜뉴스’라고 우기기만 할 수도 없다. 하니예의 장남 또한 이집트 라파 검문소에서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가자로 반입하려다 이집트 당국에 체포된 전력이 있다.
하니예의 부가 단순히 일가의 호화 생활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 돈의 상당 부분은 이스라엘 투쟁 자금으로 쓰인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분명 잘못이나 그것이 하마스의 선제 공격과 민간인 학살 및 납치를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악(惡)을 악으로 갚겠다고 나서는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피의 악순환’만 되풀이된다.
하마스가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성전(聖戰)’이라 주장하며 무력 투쟁을 강화하는 동안 가자 주민의 삶은 점점 수렁에 빠져든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에 따르면 가자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1257달러(약 151만 원)에 불과하다. 1000명의 신생아 중 16.6명이 숨지고 유아의 약 18%가 만성 영양실조로 고통받는다. 실업률은 45%가 넘는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지난달 전쟁 발발 당시 하니예와 하마스 지도부는 도하의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 노약자와 어린이 등을 납치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이를 ‘성전’으로 여길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