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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정은]마약 논란에 불똥 튄 영화계, 연예인 불법행위 막을 길 없나

입력 | 2023-11-07 23:45:00

김정은 문화부 차장


올해 3월 배우 유아인에 이어 지난달 이선균도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팬데믹으로 인한 타격에서 미처 회복하지 못한 한국 영화계가 더욱 침체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배우가 출연했다가 마약 사태로 개봉이 연기된 작품 제작비는 무려 940억 원에 달한다. 이선균은 올해 개봉 예정이던 영화 ‘탈출: PROJECT SILENCE’를 비롯해 ‘행복의 나라’는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이 한창이었지만, 전면 중단됐다. 그나마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촬영 전이라 이선균을 하차시키고 현재 대체 배우를 물색 중이다. 아직 기획단계지만 제작이 유력시됐던 이선균 주연, 김지운 감독의 애플TV플러스 ‘닥터 브레인2’도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이선균에 앞서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유아인은 영화 ‘승부’ ‘하이파이브’와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 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제작비가 총 650억 원에 달하는 세 작품 모두 6개월 넘게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태다.

일반 회사에서도 누군가의 잘못으로 죄 없는 동료까지 연달아 피해를 입게 되면 억울하고 화가 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누리꾼이 이선균의 마약류 투약 혐의가 보도된 뒤 “배우 김희원이 최대 피해자다” “음주운전 논란 곽도원에 이어 이선균까지…. 동료 배우 잘못 만난 배우 유재명이 제일 불쌍하다”는 글을 심심찮게 남길까.

김희원은 이선균과 ‘탈출…’을, 유아인과는 ‘하이파이브’를 촬영했지만 두 작품 모두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됐다. 유재명도 1232만 명이 관람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의 신작 ‘행복의 나라’에 이선균과 함께 출연했지만 역시 개봉이 불투명해졌다. 음주운전 논란을 빚은 배우 곽도원과 출연한 영화 ‘소방관’도 마찬가지다.

업계에서는 유아인과 이선균이 동료 배우들의 미래까지 발목 잡은 점을 특히 문제로 꼬집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관행상 배우의 개런티는 전작의 흥행 여부, 전작에서 보여준 연기 스펙트럼 등에 따라 정해진다”며 “주연 배우의 한순간의 실수는 동료 배우들의 몸값에까지 영향을 주는 민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보가 기획기사 ‘마약 악재 덮친 K컬처’(본보 10월 31일자 A2면 참조)에서도 지적했지만, 국내 연예인들의 마약류 투약 사건이 잊을 만하면 다시 터지는 데는 문제를 일으키면 일정 기간 자숙한 뒤 복귀해 별다른 제약 없이 활동하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본보 기사가 나간 뒤 한 연예계 관계자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했다. “시쳇말로 금융 치료란 말이 있듯 ‘위약금 치료’가 필요하다고 봐요.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을 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위약금을 물리게 하는 거죠. 불법을 저지를 때 ‘설마 걸리겠어?’라는 생각보다 무거운 뒷감당을 먼저 떠올리게 해야 해요.”

실제 일본 유명 가수 겸 배우 피에르 다키가 2019년 코카인 복용 혐의로 체포된 뒤 물어준 위약금은 총 10억∼30억 엔(약 90억∼27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벌어놓은 재산을 몽땅 털어 수백억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면 마약류에 쉽게 손댈 수 있을까. ‘위약금 치료’라는 말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가 끄덕여졌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