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에 짓눌린 대입 수시] 〈상〉 서울 12개大 수시에 ‘킬러’ 15개大 3년치 533문항 분석결과 23%가 교과과정 밖 ‘킬러 문항’
2014년 제정된 공교육정상화법 제10조는 ‘대학이 대학별고사(논술, 면접·구술고사 등)에서 고교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한 ‘킬러 문항’(교육과정 밖의 문제)을 대학별고사에서 금지한 법인 셈이다. A대가 출제한 가우스 기호를 활용한 함수 문제는 대학 교재에 나오는 내용이다. 대학별고사의 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분석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가우스 함수 등 교육과정 범위를 넘어선 기호를 출제하는 것은 공교육정상화법 위반이다.
9월 말부터 2024학년도 대입 수시 대학별고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3년간 서울 주요 15개 대학 중 12곳(80.0%)이 논술·구술고사 수학 문제에서 킬러 문항을 출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현직 교사 등 전문가들과 함께 서울 15개 대학 2021∼2023학년도 논술·구술고사 수학 문항 533개를 분석한 결과다.
2024학년도 기준 4년제대(227곳)는 수시로 입학정원의 79%를 선발한다. 한 입시 전문가는 “수험생들이 수시 킬러 문항을 수능보다 어렵게 느껴 사교육을 안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B대 관계자는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가르치는 학원은 놔두고, 학생 역량을 검증하는 대학만 문제 삼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들, ‘교과과정外 출제 금지’ 규정 안 지켜… “사교육 부추겨”
논술-면접 상당수 대학과정 출제
내년 대입정원 79% 수시 선발
수험생들 “수능 킬러보다 어려워”
수시전문 학원行… 지방서 상경도
내년 대입정원 79% 수시 선발
수험생들 “수능 킬러보다 어려워”
수시전문 학원行… 지방서 상경도
‘○○대 11월 17, 18일 2일간 17시간 끝장’ ‘17일 개강 △△대 24시간 파이널’.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수학교육혁신센터는 각 대학이 공개한 2021∼2023학년도 선행학습 영향평가 결과보고서에서 자연계열 논술·구술고사 수학 문항 533개를 분석한 결과 23.1%(123개)가 ‘킬러 문항’이었다고 밝혔다. 문제가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데다 풀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쓰거나 말해야 하니 수험생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험생들은 논술·구술고사 수학 문항에 대해 “수능에서 수학 1등급을 받아야 풀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 “수능 킬러 문항보다 어렵다”고 한다.
● 법에서 금지했지만 대학들은 출제
대학별고사에서 킬러 문항 출제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는 2014년 만들어졌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 제10조는 논술·구술고사 등이 고등학교 교육 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 또는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대학에 책무를 부여한 것이다. 수능에서는 킬러 문항 출제를 금지하는 법이 없다. 6월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부터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자연수 k에 대하여 (―k, 0)과 점 P를 지나는 직선이 원 A1, A2,… 중 하나의 원과 점 P에서만 만나고, 나머지 원과 만나지 않는 조건을 만족하는 점 P를 ‘좋은점’이라고 한다. 모든 좋은점을 구하고 이 점들을 동시에 지나는 이차곡선을 구하시오.’
D대 2022학년도 구술면접 문제다. 사걱세는 “평가원은 ‘새로운 개념을 정의한 후 출제하는 것을 지양하라’고 했는데, 이 문제에서 제시하는 ‘좋은점’의 정의는 고교 교육과정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한 해 조사할 문항만 2000개 이상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교육정상화법 위반 대학을 제대로 적발하고 지금보다 강하게 행정처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공교육정상화법 위반 대학을 처음 심의한 2016학년도부터 2022학년도까지 시정명령이 내려진 대학(중복 포함)은 42곳, 행정처분을 받은 대학은 5곳이다.
대학별고사는 대학마다 다르고 분석해야 할 문항 수가 많아 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꼼꼼하게 걸러내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2017학년도에는 57개 대학이 실시한 대학별고사 2294문항이 분석 대상이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선행교육예방연구센터가 먼저 분석하고, 교육부 장관 소속 교육과정정상화심의위원회(교육과정위원회)가 위반 여부를 심의한다. 한 전문가는 “문항 수도 많고 위원이 교육과정 전문가 외에 공무원이나 학부모단체 소속 회원 등으로 구성돼 수학의 전문적인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교육부, 위반 문항들 공개 안 해 논란 키워
공교육정상화법의 내용 자체가 모호하고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E대 관계자는 “중학교 때 배운 용어를 대학이 출제해도 이 용어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안 나왔다면 법 위반이다. 납득하기 어렵다”며 “대학별고사를 없애려고 만든 법 아니냐”고 말했다.
교육부가 공교육정상화법을 위반한 출제 문항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도 논란거리다. F대 관계자는 “어떤 문제가 법 위반으로 판정된 건지 공개되면 대학도 출제 노하우가 쌓일 것”이라며 “위반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 같으니 공개하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사걱세 관계자는 “대학별고사에서 대학 과정의 내용이 출제되는 것은 학교 교육과정을 신뢰하고 공부해온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며 “위법 사례들이 잇달아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강력한 행정처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육과정위원회에 전문가 참여를 더욱 확대해 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세밀하게 봐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