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신호등이 나타날 때마다 푸른색으로 바뀔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사람들 틈에 밀리면서 길을 건넜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서퍼들과 배우 지망생, 모르몬교도, 펑크족, 블루칼라 노동자, 카우보이들이 뒤섞여 돌아다녔다. 우리는 모두 이 도시를 맛보기 위해 왔고, 혀끝이 따끔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달콤함과 증오와 잔인함.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뉴욕에 머물렀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뉴욕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빈집이나 연못이 채워지듯 도시가 나를 채우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그런데 이런 그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킴스 비디오’는 뉴욕에 퍼진 한인 디아스포라나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김용만이 늘 만들고 싶었던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감독이 아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은 2008년에 문을 닫은 한 지점의 전 직원인 데이비드 레드먼이다. 이 영화는 킴스 비디오에 있던 엄청난 컬렉션이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로 옮겨진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그 속엔 영화를 향한 절박하고도 불건전한 애정으로 포장된 비열한 정치인과 마피아와 경찰과 젊은 도둑들이 등장하며 미국의 뉴욕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한국의 서울을 숨가쁘게 오가는 훌륭한 스릴러이기도 하다. 레드먼 감독은 다큐멘터리에서 영화가 살인이나 강도처럼 삶을 영원히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화는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범죄 중 최고의 범죄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별다른 재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이 시대에, 킴스 비디오의 이야기는 영화(아니면 문학이나 음악, 미술)와 관계 맺는 다른 방법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킴스 비디오가 단순한 사업이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김용만이 가졌던 영화를 향한 꿈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로 바뀌었다. 누구나 몇 달러만 내면 참고할 수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경험들의 아카이브이자, 이후 만들어지게 될 수많은 영화의 영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