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서 동대문에 있는 닭한마리를 먹으러 갔다. 마침 오후에 연극을 보기로 했는데 닭한마리를 먹고 대학로로 이동하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음식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크게 떠드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로 보이는 어르신 몇 분이 자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자리를 바꿔 달라고 큰 소리로 종업원에게 나무라듯 말씀하셨다.
“창가 자리는 춥다는 분과 좀 더 넓은 자리로 옮겨 달라는 분” 의견도 제각각이었고 목소리도 제각각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 앉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넷이서 한 마리만 시키면 안 되냐고 또 종업원이랑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종업원은 어르신들을 설득한 후 주문한 음식을 갖다 드렸는데 이번에는 물과 김치를 갖다 달라고 요청했고 종업원은 김치와 물은 셀프라서 직접 갖다 드셔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어르신들은 왜 이렇게 손님을 불편하게 하냐며 또 종업원에게 따져 물었다. 아,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크신지, 종업원은 어르신 여덟 명을 자리에 앉히고 주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털린 표정이었다.
한 가지 메뉴만 파는 집인데 주문받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그 식당은 동대문에 있는 유명한 식당이라 외국인 손님들도 많았는데 어르신들은 웅변대회라도 나온 사람들처럼 큰 소리로 계속 떠들면서 시비를 걸었다. 나는 너무 신경이 쓰여서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먹어야 했다. “아, 왜 이렇게 매너가 없을까? 괜찮은 어른이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가?”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혼란스럽게 점심을 먹고 대학로에 위치한 공연장으로 연극을 보러갔는데, 그 연극은 ‘시니어 연극제’ 본선에 오른 작품 중 하나였다. 극장 앞에는 일흔 살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커피를 드시며 공연을 기다리고 계셨고, 관객 입장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나오자 차례차례 줄을 서서 입장을 하셨고 지정된 좌석에 앉아 공연 시작을 기다리셨다. 객석은 한 자리의 빈자리도 없이 만석이었고 공연 시작 전에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꿔 달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자 모두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무음으로 바꿔주셨다. 연출자의 공연 소개가 끝난 후 객석의 불이 꺼지며 공연이 시작됐고, 관객들은 숨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공연에 집중했다.
배우들은 모두 시니어분들이셨고, 노인복지회관에서 난생처음 연극이라는 걸 접했고, 5월부터 배역도 정하고 스토리도 함께 만들어가면서 꾸준히 연습하신 후 오늘 처음으로 정식 무대에 오른 분들이었다. 무대가 처음이라 움직임은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대사는 힘이 있고 발성은 또렷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 배우들은 진심이었고 그걸 보는 관객들 또한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무대를 체인지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나왔고 “나이가 들고 몸은 늙었지만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자”는 메시지와 함께 마지막 대사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치는 어르신들의 힘찬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르신들의 도전과 열정에 손바닥이 뜨거워질 정도로 박수를 보내드렸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막말을 하시던 어떤 어르신들을 보고 ‘괜찮은 어른’에 대해서 고민했는데, 나는 두 시간 후 다른 어르신들의 연극 공연을 보고 ‘괜찮은 어른’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