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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채 늘어 가는데”…법정 최고금리 20% 딜레마

입력 | 2023-11-10 14:34:00

최근 불법사금융 급증…법정최고금리 인하에 고금리 겹친 탓
대부업권 "법정최고금리 인상하거나 연동형 최고금리제 도입해야"
금융위 "신중히 검토해야"…국회 "더 내려야"




#30대 남성 최모씨는 생활고에 인터넷 대부금융 네이버카페에 대출문의를 올렸고 그 글을 보고 사채업자와 처음으로 연락하게 됐다. 최씨는 사채업자로부터 105만원을 대출받았고 3주 뒤 135만원으로 상환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바로 105만원을 재대출을 받으며 한 달 후 147만원을 상환하기로 했다. 최씨는 한 달이 지나 상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고, 연장비 명목으로 45만원을 2달간 납부하게 됐다. 업체에서는 160만원가량의 추가 상환을 요구하면서 계속해서 추심을 진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 5000% 이상의 금리를 물리고 이를 성 착취 등의 방법으로 뜯어내는 불법사금융 사례를 언급하며 이를 엄벌하겠다고 예고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법정최고금리 논쟁에 다시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법정최고금리가 2018년에 이어 2021년 잇따라 인하된 가운데, 지난해부터 조달금리가 올라가자 제도권 금융 최후의 보루인 대부업권은 신용대출을 줄이고 담보대출 비중을 늘려 왔다. 그만큼 저신용자들은 빠르게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다. 대부업권은 법정최고금리 인상이 어렵다면 연동형 최고금리제 등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10일 정치권과 금융업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센터를 방문해 “고리 사채와 불법 채권추심은 정말 악독한 범죄”라며 “불법사금융을 끝까지 추적해 처단하고 범죄 이익도 남김없이 박탈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팬카페나 게임 커뮤니티에서 대리 입금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10만원의 소액을 빌려주고 수고비, 지갑비라는 갖은 명목으로 연 5000% 이상의 높은 이자를 요구하며 협박, 폭행, 불법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30대 여성은 지인의 연락처를 담보로 100만원을 빌렸다가 연 5200%의 살인적 금리를 요구받고 성착취를 당한 사건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불법사금융 급증…법정최고금리 인하에 고금리 겹친 탓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불법사금융 특별단속 기간’을 운영했다. 그 결과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불법사금융 관련 검거건수는 지난해보다 35% 늘었고 구속인원은 3.6배, 범죄수익 보전금액은 2.4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불법사금융 관련 신고·상담건수는 4만7187건으로 지난해보다 3.8% 늘었는데, 불법 대부·유사수신 피해 신고·상담 건수는 1만62건으로 지난해보다 23.6% 크게 늘었다.

감소세를 보이던 불법사채 피해는 2020년을 기점으로 증가세로 전환했다. 특히 고금리와 관련한 신고건수는 2020년에서 지난해 두 배로 뛰었다. 서민들의 이자비용 경감과 대출시장 접근성 제고를 위해 정부는 2020년 법정최고금리를 인하했지만, 결과적으로 취약차주들은 수십배에 달하는 이자를 내는 제도권 밖 불법사채 시장으로 내몰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민원을 보면 2018년 12만5087건에서 2019년 11만5622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법정최고금리가 인하된 2020년 이후, 2020년 12만8538건, 2021년 14만3907건 등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피해유형 중 ‘고금리’ 항목을 살펴보면 2018~2019년 각각 518건, 569건으로 500대에 불과했던 피해건수가 2020년엔 1219건으로 2배가량, 2021년엔 2255건으로 4배가량 늘었다.

이들이 불법사금융에서 대출을 실행한 이유는 기준금리 상승이 계속되는 가운데 채권시장까지 경색되며 카드사 등 2금융권은 물론 ‘제3금융권’이라 불리는 대부업계까지 대출 규모를 줄인 영향이다. 대부업계는 높아진 조달금리로 인한 수익성 악화, 신용리스크 등에 대비해 대출 규모를 줄였고, 결과적으로 저신용 취약차주들은 제도권에서 배제됐다.

◆대부업권 “법정최고금리 인상하거나 연동형 최고금리제 도입해야”

일부 전문가와 대부업권은 저신용자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정최고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법정최고금리가 2018년에 이어 2021년에 2회 인하되는 추세인 만큼 이를 되돌리기 어렵다면 법정최고금리를 시장금리와 연동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지난달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주최한 제14회 소비자금융 컨퍼런스에서 “최고금리 인하로 악화된 서민들의 금융접근성은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될 경우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다수의 선행연구에서 이미 예측됐듯이 최고금리 인하로 인해 저신용자 배제, 사회적 후생이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대부업권 비용구조는 공급자 입장에서 법정최고금리를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이므로 금리체계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며 대부업권에 연동형 최고금리제 등의 도입을 제시했다.

◆정부, 입장 표명 없어…국회 “더 내려야”

연초 정부가 법정최고금리 인상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금융당국은 곧바로 결정된 바가 없다고 해명하는 등 정부는 이와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정최고금리와 관련해서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서민층의 금융 접근성이라든지 금리 부담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회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 대부분은 법정최고 금리 인상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현재 법정최고금리를 20% 이하로 인하하는 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는 상태다.

금리인하3법을 발의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법사금융업자(미등록대부업자)는 법정최고금리와 관계없이 과거부터 골목마다 존재해 왔다”며 “법정최고금리를 24%에서 20%에서 내리는 것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A 정무위원은 “법정최고금리 인상을 검토한 적이 없다”며 “현재 20%도 엄청 높은데 더 올리면 악화된 상황을 가속화 시킬 뿐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위원은 연동제 도입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B 정무위원은 “제2금융, 제3금융권에는 어느정도 적정한 시장탄력성을 유지시키지 않으면 되레 정말 어려운 분들이 자금 융통을 할 수 없을 수 있는 만큼 통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