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상대한 이라크 모술보다 더 치열… 대규모 민간인 피해 시 국제여론 악화
이스라엘군이 11월 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뉴시스]
이라크군은 미로처럼 얽힌 도시에서 주민을 ‘인간방패’ 삼아 저항하는 IS 대원들과 전투하느라 상당히 고전했다. 당초 3개월이면 끝날 것이라던 전투는 9개월이나 계속됐다. 이라크군 8200여 명이 전사했고, 민간인 9000~1만1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으며, 건물 1만3000여 채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악마의 놀이터’ 된 가자시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10월 29일 이스라엘군 급습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스라엘군은 시가전 특성상 민간인 피해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민간인 피해가 커질수록 국제여론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이스라엘군의 가자시티 시가전은 모술 전투와 비교할 때 민간인 피해가 훨씬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전부터 가자시티에 거주해온 민간인은 65만 명(가자지구 전체는 23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여러 차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남부 지역으로 이동하라고 촉구했지만 현재 가자시티에 남아 있는 주민이 최소 20만~40만 명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듭된 경고에도 유엔이 운영하는 병원이나 학교에 대피해 있다. 가자시티를 포함해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는 병원 10개가 있는데, 이곳에 주민 11만7000여 명이 대피 중이다. 유엔은 이 중 알시파 병원에 5만여 명, 알쿠드스 병원에 1만4000여 명이 몰려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 지휘통제소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가자시티 내 병원들을 작전지역으로 규정했다. 시가전이 벌어지면 병원에서 생명유지 장치를 달고 있는 중환자는 물론, 대피 중인 주민들까지 자칫하면 희생될 수 있다. 이 경우 가지지구 내 병원들이 가장 치열한 시가전 무대가 될 전망이다.
“죽음의 냄새 도처에서 난다”
11월 6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방사포를 확인하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뉴시스]
마이클 나이츠 미국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 연구원은 “병원 아래에 대형 땅굴을 파는 전술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나 예멘 후티 반군, IS 등 여러 무장세력이 써온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지하시설이 있다고 지적한 장소는 모두 접수처와 응급실, 집중치료실, 수술실, 유치원 등이 있는 곳”이라며 “이 시설들은 환자와 의료진, 피란민으로 북적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병원을 공격하는 행위는 국제인도법의 대원칙인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범죄’로 간주된다. 하지만 병원이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는 예외다.
가자시티 시가전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볼 때 기동전이 아니라 소모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가자시티에는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탱크 등을 동원해 기동전을 벌일 만한 넓은 토지가 없다. 이스라엘군은 평야 내 기동전에 최적화돼 있어 시가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반면 하마스는 가자시티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유리하다. 하마스 대원들은 가자시티의 도시 기반 시설에 은신하면서 이스라엘군을 기습 공격하는 등 특유의 게릴라 전법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IS와 하마스의 차이점
10월 11일 가자지구 일대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고 있다. [뉴시스]
시가전에서는 탱크 포와 전투기의 정밀 폭탄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롭 리 미국 외교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도시 내에서 방어하는 적, 특히 좋은 방어를 구축할 시간이 있었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적과 맞서 싸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하마스는 모술을 점령한 IS보다 병력이 5~8배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하마스 대원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도시 지형을 잘 알고 있고, 주민들과 혈연이나 종교로 연결돼 있다. 모술에서는 해외 출신이 대부분인 IS 대원을 싫어하던 주민들이 이라크군에 직접 정보를 줬고, 이 정보를 기반으로 IS를 공격할 수 있었다. 반면 하마스는 가자시티 주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가자시티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관련 정보를 하마스에 넘기면서 이들이 정보의 우위마저 점할 것으로 보인다.
“가자시티 모술처럼 될 것”
이스라엘군은 이라크군보다 훨씬 훈련이 잘돼 있고 지하터널에 대응할 특수공병부대를 보유하는 등 작전 준비가 잘돼 있다. 하지만 하마스는 IS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도시 곳곳에 어떤 군사시설을 숨겨놨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학교 아래에 로켓 공장이 있다거나, 모스크에 무기가 보관돼 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술 전투에서도 IS는 아파트 문이나 자갈에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등 각종 폭발물을 곳곳에 매설해놓았다. 가자시티에서도 하마스가 무너진 건물 잔해와 건물 입구에 폭발물을 설치했을 개연성이 크고, 냉장고 등 크고 무거운 물체로 도로를 막아 장갑차와 탱크의 진격을 방해할 수도 있다.
시가전 전문가인 에이머스 폭스 영국 리딩대 교수는 “가자시티 시가전은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봐온 어떤 전투보다 치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동 시가전 전문가이자 미 육군 전략가인 토머스 아놀드 중령도 “최악일 것이다. 모든 것이 훨씬 어렵다”면서 “도시는 화력과 병력 등의 우위를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강조했다. 바레인 르벡인터내셔널 위험 관리 컨설팅사의 마이클 호로비츠 정보분석가는 “이스라엘이 원하는 대로 하마스를 무너뜨리고 군사력을 파괴하면 가자시티 전역이 모술처럼 될 것”이라며 “이는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 및 피해 발생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역사적으로 시가전은 방어하는 쪽이 공격하는 쪽보다 훨씬 유리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마리우폴이 대표적 예다. 당시 우크라이나군 수천 명이 8배 규모의 러시아군을 상대로 3개월 동안 포위된 채 버텼다. 시가전이 길어지면 인명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선전전을 벌이고 있는 만큼 시가전에서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 여론은 악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14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