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경찰청 제공
노숙자들을 유인해 노숙자 명의의 유령법인을 설립한 뒤 대포통장 수백 개를 개설해 범죄조직에 넘기고 사용료를 챙긴 일당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13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범죄단체조직,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30대 총책 A 씨 등 32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 중 비슷한 범죄로 이미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A 씨 등 9명에 더해 조직 간부 20대 B 씨 등 2명을 추가 구속했다.
A 씨 등은 2020년 9월경부터 최근까지 경기·대전·대구 등의 노숙자 22명을 유인해 명의를 넘겨받아 유령법인 38개를 만들고 법인통장 125개를 개설해 불법 도박사이트와 전화금융사기 등 범죄 조직에 제공한 뒤 사용료를 챙긴 혐의를 받는다.
통장개설팀은 주거가 불량한 노숙인이나 신용불량자에 100만~200만 원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접근해 인감증명서 등 법인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받고 법인을 만들었다. 이어 금융기관에 대리인 자격으로 방문해 통장을 개설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통장은 A 씨를 통해 월정액 80만~300만 원 대여 방식으로 범죄조직에 제공됐다. 범죄조직으로 통장이 넘어간 후에는 A/S팀이 법인 서류 등을 지속해서 관리했다.
범죄조직은 1차 계좌 54개로 피해자들로부터 직접 입금받고, 나머지 71개를 돈세탁을 위한 2~3차 계좌로 이용했다.
1차 계좌 입금액 중 전화금융사기 피해자는 101명, 피해 금액은 68억 원 상당으로 확인됐다. 1~3차 계좌 총 입·출금 거래내역은 1조8200억 원에 달한다.
조직원들은 A 씨로부터 월 300만 원가량의 임금과 개설된 통장 1개당 10만 원 남짓의 인센티브를 받고 범행에 가담했으며 받은 돈은 생활비와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2년여간 사용료 등으로 10여억 원을 챙긴 것으로 추정되나, 체포 당시 계좌나 자택 등에 보유한 현금은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유흥비 등으로 모두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수사망이 조직 전체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원 가명을 사용했고, 조직원끼리도 사무실 위치를 공유하지 않았다. 또 하부 조직원이 경찰에 체포될 시 ‘인터넷에서 고수익 알바를 구한다고 해 참여했다’고 둘러대도록 사전에 교육하고, 텔레그램 대화방을 수시로 삭제하게 하는 등의 행동 수칙도 만들어 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해 체포된 32명 전원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