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책임연구원
지난달 24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월드 에너지 아웃룩(World Energy Outlook)’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석유 수요가 2030년쯤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30년까지 현재 대비 10배 이상 증가할 전기차 보유량과 중국의 에너지 다변화를 통한 성장전략으로 화석연료 시대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IEA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맹신할 수는 없다. IEA는 주요 석유 소비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1970년대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설립한 기구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 보고서는 고유가를 희망하지 않는 소비국들의 편향적인 내용만 담겼을 수 있다.
지난달 9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 연합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보고서에 따르면 OECD 이외 국가까지 포함하면 석유 수요의 정점 시기는 2024년으로 예측됐다. OECD 전망과는 차이가 있다.
석유 수요 정점 시기가 예상보다 지연되는 가운데 구조적인 공급 부족까지 발생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장기간의 저유가와 강압적인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석유개발(E&P)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는 감소했다. 설비투자 부족의 여파가 통상 5∼7년 이후 나타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르면 2027년, 늦으면 2034년까지 원유 공급이 둔화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바레인,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4국의 신규 유정은 2028년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지만 이 역시 매년 축소 또는 순연되고 있다. 2027∼2034년 원유 수급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과거와 같은 수준의 유가로는 돌아가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단기 변수는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로 수직 낙하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OPEC의 감산과 중국의 부양책이 중첩되자 유가는 곧바로 배럴당 100달러대로 회귀했다. 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장기간 저유가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IEA와 OPEC는 석유 수요와 공급을 대변하는 단체로 수요 정점에 대해서는 계속 상반된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이들의 논쟁과 별개로 국제 유가와 관련해 석유의 공급 부족이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몇 년은 현재의 높은 유가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향후 경제를 전망하고 전략을 짤 때 이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