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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김현수]뉴욕 ‘프렌즈 아파트’에서 본 K컬처 미래

입력 | 2023-11-13 23:48:00

현장서 만난 佛 소녀들 “요즘 한국어 배워”
우리 안의 인종-성 편견 극복해야 지속



김현수 뉴욕 특파원


지난달 말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이른바 ‘프렌즈 아파트’에 가봤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 ‘프렌즈’ 배경이 된 건물이다. 프렌즈에서 챈들러 빙 역을 열연한 배우 매슈 페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아파트 앞은 추모하러 온 팬으로 가득했고, 가로등 주변에는 꽃다발과 편지가 쌓여 있었다.

팬들을 살펴 보니 드라마 종영 이후 태어났을 10대 소녀들이 많아 신기했다.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 관광객 세실리아(17), 로나(14) 자매는 어머니와 함께 최근까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을 통해 재방영되는 프렌즈를 시청했다며 “친한 친구를 잃은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이 뉴욕 여행을 오게 된 계기도 드라마 프렌즈를 보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간을 견뎌 내는 문화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자매에게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요? 우리는 K팝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동생이 먼저 배웠고 저도 이제 막 시작했어요. 서울에도 꼭 갈 거예요.”

나이와 국적, 인종이 다른 소녀들과 20년 전 미국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K팝을 화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세계화가 본격화하던 1990년대 미국을 넘어 세계의 문화 아이콘이 된 프렌즈처럼 K컬처가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 현상으로 지속 가능할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십수 년 전과 비교해 미국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대접이 달라진 것을 매일 실감한다. 며칠 전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깜짝 콘서트를 열어 일대가 발칵 뒤집어졌다. 일부 지역 방송은 헬기까지 띄워 수천 명이 광장을 가득 메운 모습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뉴욕에서 인기 있는 한식당에 가면 ‘안동에서 한국 장인이 만든 고추장’ 같은 스토리텔링이 현지인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된다. 대부분 미국인은 안동이 어디인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미국 마트 ‘트레이더조’ 김밥 열풍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뿐인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필라델피아미술관 같은 주요 도시 대표 미술관 5곳 이상에서 한국 미술을 조명하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K스타트업 포럼에 참석한 마이크 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요즘은 (내가) 한국계임을 밝히면 주위 사람들이 ‘쿨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떠오르는 K컬처의 한계도 조금씩 느껴진다. 콘텐츠 다양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과 기대가 높아지는 만큼 비판적 기류를 감지할 때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종차별 문제다. 알고 지내는 인도계 미국인 엔지니어는 K드라마 팬이다. 드라마에서 봤다면서 “얼마나 맛있기에 야근하고 나서 회사 사람들끼리 고기를 굽느냐”고 궁금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여행은 포기했다고 최근 털어놨다. “피부색이 어두우면 무시당할 수 있다고 들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될까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지인은 “한국에서 여자가 비만이면 문제로 본다는데 진짜인가”라고 물어왔다.

물론 이들의 반응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부에서 제기한 편견이 바탕이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속 K컬처가 자랑스러운 만큼 우리 스스로도 세계시민으로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야 K컬처가 지속 가능한 문화 현상이 되는 상상이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