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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근로시간 개편’ 8개월 끌다 노사정대화에 ‘맹탕안’ 던진 정부

입력 | 2023-11-14 00:00:00

정부가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새로운 ‘근로시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3일 저녁 기업들이 입주한 서울 시내 사무실에 불이 밝혀져 있다. 2023.11.13 뉴스1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일부 업종에 한해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광범위한 설문 조사에서 근로시간 유연화의 지지 여론을 확인했다면서도 구체적인 개편 내용은 노사정 대화에 맡기겠다고 했다. 올 3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주 69시간 근무’ 논란에 휩싸인 후 보완작업을 해 온 정부가 8개월 만에 ‘일부 유연화’로 한발 물러선 맹탕안을 내놓으면서 정부의 1호 노동개혁이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정부가 근로자와 사업주, 일반 국민 603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는 주 52시간제 개편의 필요성에 다수가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행 ‘기본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에서 주 단위의 연장근로 관리 기간을 확대하는 데 대해 노사와 일반 국민 모두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 건설·채굴직과 연구·공학 기술직에서 개편 요구 비율이 높았다. 개편안을 마련한다면서 설문 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 근로시간 유연화가 시급한 업종과 직종이 나왔는데도 구체적인 대상 업종과 연장근로 관리 기간이 빠진 맹탕안을 노사정 대화에 떠넘긴 이유가 뭔가.

일이 많을 때 바짝 일하고 나중에 몰아서 쉬는 근로시간 유연제는 선진국에선 보편적인 근로 방식이다.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주 단위로 경직되게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다른 나라는 반년이나 1년 단위로 관리해 기업이 융통성 있게 인력을 운용하고 근로자들은 일할 시간과 조건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보장한다. ‘실제로는 몰아서 일만 시키고 나중에 못 쉬는 것 아니냐’는 청년 세대의 우려는 안전장치와 건강권 보호 방안으로 해결하면 되는 문제다. 그런데 힘들게 설득하기보다 총선을 앞두고 쉽게 포기하기를 택한 것이다.

정부는 노사정 대화로 하자면서도 대화를 어떤 식으로 할지, 언제까지 개혁안을 도출할지에 대한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한국노총이 이날 노사정 대화기구 복귀를 선언했지만 정부의 맹탕안에서 시작해야 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연금개혁도 큰소리치다 연금이 줄어들까 여론이 싸늘해지자 지난달 맹탕 개혁안을 내놓으며 국회 공론화 과정을 거치자고 했다. 반대 여론에 부닥칠 때마다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를 찾기 바쁘면서 무슨 개혁을 하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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