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청년공간 이음에서 한 청년이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다. 라면, 과자, 커피 등이 비치된 이곳은 청년들이 허기를 달래는 휴식 공간으로 쓰인다. 김송현 인턴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4학년
“물가가 오르는 바람에 지난해보다 식비가 50%나 늘었어요. 100만 원 가까이 나오는 바람에 여기서 저녁 먹는 날만 기다립니다.”
7일 오후 7시경 서울 관악구 청룡동의 한 교회. 관악구 중앙사회복지관이 ‘1인 가구 청년’을 대상으로 무료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이 곳에서 볶음밥과 미역국 등을 배식받던 직장인 한모 씨(31)는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자취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힘이 된다”며 웃었다.
복지관은 매주 화요일 저녁 2시간 동안 저녁 식사를 주는데 샌드위치나 커피, 과일도시락 등 포장메뉴도 가능해 인근 청년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이날 교회를 찾은 17명은 20대 초반 사회 초년생부터 30대 중반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 냉동식품 지원 받아 10만 원 아끼기도
기초생활수급자나 홀몸노인 등을 주로 지원하던 복지관에서 2030 세대를 지원하는 건 고물가로 제대로 끼니를 챙겨먹지 못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한모 씨(28)는 “밖에 나가면 돈이라 거의 집 안에만 있는데 식비라도 아끼려고 용기를 내서 왔다”며 “아르바이트 장소가 아닌 곳에서 오랜만에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과일을 보며 반가워하는 청년도 있었다. ‘칼퇴’하고 이곳으로 왔다는 공무원 전모 씨(28)는 “요즘 식비가 올라 끼니를 때우기에 급급하다보니 과일을 먹을 일이 많지 않다”며 “귤이 나오는 걸 보고 반가웠다”고 말했다.
자취생들이 집에서라도 식사를 챙겨먹을 수 있도록 냉동식품을 지원하기도 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은평구 서울청년센터 ‘나눔 냉장고’는 매달 둘째, 넷째 목요일에 즉석밥 빈 용기 하나를 가져오면 냉동식품을 1개씩 준다. 최대 5개까지 받을 수 있다. 대학생 김모 씨(26)는 “냉동만두, 냉동 볶음밥, 냉동 치킨 등 한 번에 5만 원 어치도 받은 적 있다”며 “재활용품을 활용해 한 달에 10만 원은 아낄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함께 밥 먹으며 고립감 해소도
관악구의 한 비영리단체가 운영 중인 ‘밥상 동아리’는 2030세대에게 식재료를 주고 공유주방에 모여 함께 요리한 음식을 먹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교류할 기회까지 주는 것이다.
이곳을 찾은 직장인 안승균 씨(37)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오다 보니 한 달에 열 번은 찾는 것 같다”며 “한 달에 식비 15만 원을 절감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혼밥’ 대신 같이 식사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
비영리단체 관계자는 “관악구에 청년 1인가구가 많다 보니 식사라도 한 끼 챙겨주고 싶어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립·은둔 청년의 경우 식사를 제대로 못 챙겨먹는 비율이 더 높다. 지난해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고립청년들의 비율은 13%로 일반 청년들이 하루 1끼를 먹는 비율(5.5%)의 2배 이상이었다. 밥상 동아리를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정모 씨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매주 3, 4차례 지하철을 타고 찾아온다”며 “우울증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자연스레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격도 많이 밝아졌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대상 식사 지원 사업이 경제적 정서적 지원 기능을 하는 만큼 보완 발전 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출 부담이 커지면 외부 활동이 제약되면서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식사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이 커뮤니티를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면 사회적 활동을 촉진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
김송현 인턴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