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빠진 ‘메가시티’ 형식 논쟁 부동산보다 국가경쟁력 대책 필요
박용 부국장
요즘 미국 텍사스가 잘나간다. 텍사스가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에서 창단 62년 만에 우승해서 하는 얘긴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내놓은 ‘2023년 사업하기 좋은 미국 도시’ 상위 10위의 절반이 휴스턴(1위) 플래노(3위) 어빙(4위) 댈러스(5위) 오스틴(7위) 등 텍사스 도시다. 20위권에 댈러스-포트워스 대도시권 5개 도시가 포진했다. 거점도시인 메가시티와 주변 도시가 분업체계를 갖추고 전 세계 기업 투자를 끌어오는 ‘텍사스판 메가시티리전(Megacity Region·초광역경제권)’의 힘이다.
텍사스 주도인 오스틴은 테슬라와 델, 삼성전자가 있는 남부의 ‘테크허브’이며 북쪽의 댈러스는 텍사스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금융허브’다. 댈러스에서 차로 3시간 남짓 떨어진 남쪽엔 포천 500대 기업 중 26곳을 보유한 휴스턴이 있다.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간판 기업인 HP가 지난해 이곳으로 이전한 건 이 도시가 왜 사업하기 가장 좋은 곳인지 보여준다.
남부 특유의 사투리와 석유, 카우보이의 고장쯤으로 알려진 텍사스는 어떻게 최고가 됐을까. FT에 따르면 텍사스는 자유방임적 기업 환경에 연방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의 보조금을 활용한 인센티브 패키지로 기업 투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주 정부는 기업과 개인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생활 물가도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LA)와 같은 동·서부 대도시보다 훨씬 낮다. 덕분에 2000년 이후 텍사스 인구가 900만 명 이상 늘었다. 경제 규모는 3배로 커져 한국 이탈리아보다 큰 세계 8위권으로 성장했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여야 정치인들이 외치는 ‘한국판 메가시티’ 비전은 뭔가. 서울 인구가 주는 건 높은 집값과 생활비에 지친 시민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김포가 서울에 편입돼 집값이 오른다면 누군가는 더 싼 집을 찾아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메가시티를 베드타운 확장이나 부동산 정책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서울이 뉴욕보다 작다고 하는데 뉴욕은 자치구가 5개(맨해튼, 퀸스, 브롱크스, 브루클린, 스태튼 아일랜드)다. 서울은 구청장 25명에 각각 구의회까지 두고 있다. 주민의 삶은 광역화하고 도시는 연담화하고 있는데 우리 지방 행정은 지나치게 분절적이고 기능적으로 단절돼 있다.
메가시티 근간은 거점도시와 주변 도시를 1시간 내로 연결하는 광역교통망이다. 서울 경기 인천의 단체장들이 대중교통 정기권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칸막이 행정’을 하고 ‘김포 지옥철’ 해법도 제대로 못 내놓으면서 ‘메가서울’은 무슨 수로 만드나.
민간 투자가 빠진 지방 메가시티 논의도 알맹이가 빠져 있다. 정부가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공공기관을 강제로 옮겨놨지만 지방소멸 위기는 가시지 않는다. 지역 거점도시는 쇠락하고 있다. 미 실리콘밸리나 애리조나 반도체벨트는 스탠퍼드대나 애리조나대와 같은 지역 명문대가 투자와 인재 유치의 구심점이다. 지방 명문 국립대조차 모멸적 대접을 받는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