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 일상적 의미를 파괴하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건국론 삶 속의 자연스러운 역사인식 훼손 국민이 무슨 바보인 줄 아나
송평인 논설위원
광복회장은 2011년 박유철 회장 취임 이래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인 과거 광복회장들은 국민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근래 광복회장들이 오히려 더 국민을 가르치려 한다. 박 회장 때도 조짐이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김원웅 회장 때에 와서 심각해졌다.
현 이종찬 회장은 일제하에서도 나라를 잃은 적이 없다고 한다. 국민 모두가 나라 잃은 설움을 말해 왔는데 혼자 나라를 잃은 적이 없다고 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따르면 근대 국가의 최소한의 요건은 군대 경찰 같은 물리력의 독점이다. 굳이 베버를 거론하지 않아도 억지만 부릴 생각이 없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가 억지를 부리는 것은 실은 ‘1948년 건국론’을 비판하고 싶어서다. 그러면서 뒷문으로는 ‘1919년 건국론’을 끌어들여 ‘문재인 시즌 2’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나라가 식민지 한가운데서 있을 때 건국됐다는 주장은 액면으로도 논리모순적이어서 그 반박은 독자들의 타고난 이성에 맡기겠다.
후대의 대통령들은 건국 시점을 1948년으로 봤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억지를 부리지 않을 때는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2건국’의 과욕을 부리다가도 1998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건국 50년’이란 표현을 썼다. 한국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본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과 2007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1948년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이 나라를 건설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건국이란 말의 자연스러운 의미에 따른 건국 시점은 1948년이다. 그러나 1919년에 건국됐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있어 시비를 건다면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 맞서 싸우다 보면 건국, 즉 ‘네이션 빌딩(nation-building)’에 담긴 진짜 중요한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건국이 언제 시작됐건 우리는 온전한 네이션 빌딩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정부 수립도 산업화도 민주화도 네이션 빌딩의 과정이었고, 당면한 과제인 양극화 극복과 지역 분열 극복도 네이션 빌딩의 과정이고, 멀리는 통일도 네이션 빌딩의 과정이다. 이것이 과거로 먹고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건국관이다.
고려나 조선에는 개국 공신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은 광복부터 우리 힘으로 이룬 게 아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은 “해방은 자기네가 투쟁한 결과로 되었다”는 자들은 “그림자도 없어져라”고 일갈했다. 해방은 선물처럼 주어졌다. 선물의 가치는 선물로 다시 얻은 나라를 얼마나 살 만하게 만들었느냐에 달렸다. 우리가 굳이 건국 공로자를 기린다면 해방이 자기네가 투쟁한 결과로 되었다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질서의 토대를 놓았으며, 누가 민주주의가 가능한 경제적 기반을 닦았으며, 누가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뤘으며, 앞으로 누가 양극화와 지역 분열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는지를 봐야 한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역사와는 다른 역사를 강요하는 일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했고 지금 이 회장이 하고 있다. 철학자 후설은 이런 현상을 ‘생활세계(Lebenswelt·everyday life)의 식민화(植民化)’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생활세계란 살면서 저절로 갖게 되는 앎의 총체다. 거기에는 역사인식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가장 심각한 분야 중 하나가 한국 현대사다. 문 전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한가운데서의 건국론’이나 이 회장의 ‘일제강점기 때도 나라를 잃은 적이 없다’는 궤변은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생활세계의 식민화 시도가 얼마나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