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영상진단-불면증 치료기기, 이달부터 처방… 건보 적용 추진 병원서 사용후 유효성 등 평가 의료계 “안전 위협… 임상비용 전가” 산업계 “검증만 수년… 위험성 적어”
#사례1. 의료 인공지능(AI) 개발업체 A사가 개발한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는 진단 정확도 94%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자기공명 혈관조영(MRA) 영상을 AI가 분석해 뇌동맥류 의심 부위를 표시해주는 디지털 의료기기다. 하지만 대한영상의학회 분석 결과 실제 병원에서 사용했더니 정확도가 66.7%에 불과했다.
#사례2. B사는 불면증에 도움을 주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개발했다. 불면증 습관 개선을 돕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다. 해당 업체는 불면증 환자 60여 명으로 임상을 진행해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임상에 참여한 환자 수가 적어 효과가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 이달부터 디지털 의료기기 병원 처방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부터 디지털 의료기기의 병원 처방이 가능하다. 디지털 의료기기는 알약이나 주사제가 아닌 디지털 소프트웨어로 질병을 진단, 치료, 관리하는 의료기기를 뜻한다. 현재까지 식약처 허가를 받은 디지털 의료기기는 AI 영상 진단 소프트웨어가 9개, 불면증 치료 기기 2개 등 총 11개 제품이다. 이 중 불면증 치료 기기 등은 이달부터 환자 처방이 시작된다. 조만간 건강보험 적용도 가능해진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바이오 디지털 헬스 글로벌 중심 국가 도약’을 10대 국정과제로 삼았고, 복지부는 의료기기 산업에 2027년까지 최대 10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의료현장에서 디지털 기기 처방이 본격화된 것이다.
하지만 보건당국의 부실한 검증과 허가 절차로 의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식약처는 디지털 의료기기 품목 허가를 진행하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보의연)은 안전성, 유효성을 평가한다. 현장에서는 우선 ‘허가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식약처는 업체가 제출한 임상 자료로 제품 허가 여부를 판단한다. 디지털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 자료나 기준이 명확히 없다 보니 규제기관이 업체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식약처가 마땅한 허가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근거로 검증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C사는 눈의 이상을 발견하는 AI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식약처 허가까지 받았지만 임상데이터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D업체의 AI 뇌동맥류 분석 소프트웨어는 91% 정확도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지만, 병원에서 사용해본 결과 80.6%에 불과했다.
● 정부, 올해 내 선도입 후평가 도입… “환자 위협” vs “기업 생존”
나아가 정부는 올해 내로 디지털 의료기기를 먼저 시장(병원)에 진입시킨 뒤 나중에 평가하는 ‘선도입 후평가’를 도입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식약처 품목 허가→보의연 안전성 평가’를 거쳐야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보의연 평가 없이 바로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 대신 병원에서 최대 5년 이내에 안전성, 유효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임상 근거를 제출해야 한다. 일단 먼저 팔도록 허용하고 안전성은 나중에 검증하는 것.
의료계와 환자단체들은 ‘기업이 부담해야 할 임상 비용을 환자에게 전가하고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로운 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보의연의 검증 절차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처방 후 평가는 안전성 등에 대한 비용을 결국 환자에게 부담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준범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환자에게 처방했음에도 평가에서 탈락해 퇴출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디지털 의료기기는 일반 의료기기보다 위험성이 작은 데다 산업 육성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 규모는 약 2600조 원으로, 2027년까지 연평균 5.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의료 AI 기업 관계자는 “빠른 속도로 신기술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검증에만 수년이 소요된다면 기업 생존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재태 보의연 원장은 “의료기기의 안전과 효과는 정부가 보증해야 할 사안으로 개선안이 시행되더라도 사후 평가를 철저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홍은심 헬스동아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