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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킬러규제 개혁’ 법안 146개 중 국회통과 6개

입력 | 2023-11-15 03:00:00

[국회에 발목잡힌 규제 개혁]
발의후 평균 333일 국회서 표류
유통발전법 1200일 넘게 계류중
여야 정쟁에 산업혁신 발목 잡혀




민생 안정과 경제 활력을 위한 규제개혁 혁신 법안 146개 중에서 단 6개 법안만 국회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힘겨루기와 국회 파행 등으로 규제 완화 법안 10개 중 9개가 발의부터 평균 333일이 지나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규제 혁파’에 드라이브를 건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주요 혁신 법안이 국회에 발목 잡혀 기업과 국민이 피해를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규제혁신 입법과제’를 전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과제 법안 146개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6개로 4.1%에 그쳤다. 통과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된 기간은 평균 499일(약 1년 4개월)이었다. 가장 오래 계류됐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최초 발의 시점에서 1162일이 지나서야 통과됐다. 국조실은 주요 규제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신속 통과되도록 별도 관리하고 있는데, 별도 관리 법안조차 제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규제개혁 1호 과제’였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조차 여야 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1200일이 넘게 상임위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 140개 중 15개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약 80%에 이르는 125개 법안은 여전히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 연내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신산업의 기틀을 잡고, 규제 장벽을 허물어 기업들에 혁신을 유도하는 법안 상당수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교정해 종자나 치료제 등을 생산하는 ‘유전자 교정’ 기술 관련 내용이 담긴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나 메타버스 기본법, 인공지능 기본법 등은 여야 갈등이 크지 않은 법안인데도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8월 발표한 분양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골자로 한 주택법 일부 개정안 등 주요 민생 법안도 상임위 단계에 머물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과 경기 부진이 맞물린 상황에서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규제 개혁이 필수적”이라며 “여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규제개혁 1호’ 유통발전법, 1212일째 국회 표류… 회의 9차례뿐



마트 영업시간외 온라인 배송 놓고
여야 이견에 상임위 문턱도 못넘어
유전자 교정-메타버스 지원법안 등
신산업 혁신기술 국회서 발목 잡혀

“전국상인연합회, 수퍼연합회가 모두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습니다.”(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무슨 얘긴지 알겠는데, (소상공인들의) 협회랄지 여러 단체가 있으니까 그 입장도 좀 수렴해서 전달해 주십시오.”(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상공인연합회는 사실 (전통시장과) 관련 없는 쪽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산업부 관계자)

올해 8월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소위원회. 대형마트가 문 닫는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하도록 규제를 풀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개정안이 2020년 9월 국회에 상정된 뒤 9번째 논의됐지만, 결국 이날도 결론을 못 내고 끝났다. 전국상인연합회 등 유관 단체가 대표성이 있는지, 소상공인연합회를 협의 대상으로 넣을지 등 공방만 벌이다가 흐지부지된 것. 이달 14일 현재까지 개정안이 상정된 지 1212일이 지났지만 해당 법안은 다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 국회 ‘트집’에 규제개혁 1호 과제도 지지부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 소도시 주민들은 새벽배송 같은 ‘물류 혁신’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대형마트들은 물류창고와 재고가 있는데도 놀리고 있다. 경기 하남시에 거주하는 회사원 이모 씨는 “길 건너면 서울인데 마트에서 새벽배송이나 휴일배송을 받을 수가 없다”며 “가격이 싸도 배송을 못 받아 더 비싼 곳에서 사기도 한다”고 했다.

이처럼 신산업 기반을 닦고, 규제 장벽을 허무는 규제개혁 법안들이 국회에 발목이 잡히면서 국내 기업들의 혁신이 지연되고 국민 불편만 커지고 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이 아니어도 여야 간 정쟁과 힘겨루기에 논의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네거티브 규제 외쳤지만 법안명 놓고 하세월


정부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 법률에서 금지하지 않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네거티브(negative) 규제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법안 처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9월 발의된 뒤 1년 넘게 국회에 묶여 있는 ‘메타버스산업진흥법’이 대표적이다. 올해 2월을 마지막으로 국회 논의가 중단됐다. 당시에는 법안 이름을 메타버스법으로 할지, 가상융합산업법이나 가상융합기술법으로 할지, 또 메타버스 서비스에 게임적인 요소가 있을 경우 게임산업법을 적용할 것인지 등 변죽만 울리다 끝났다.

이제 막 태동 단계인 메타버스 산업은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장래성이 있는지 판단할 기본법 제정이 시급한데 관련법 통과가 기약 없이 미뤄지며 기업들도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년 2월 증강현실(AR) 글라스 기술을 공개할 예정인 시어랩스의 정진욱 대표는 “관련법이 빨리 국회에서 통과돼야 새로운 기술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텐데 소식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로봇 배송 실증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최진 모빈 대표는 “로봇배송과 드론택배가 상용화되려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통과가 절실한데 몇 년째 상정됐다는 소식만 듣고 있다”며 “실증사업으로 끝나지 않고 상용화가 되려면 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했다.



● 시민단체 반대 의식해 신산업 싹 잘라


유전자 염기서열을 자르거나 제거해 종자나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이른바 ‘유전자 교정(GE·Gene Editing)’ 기술을 보유한 ‘툴젠’. 이 기업은 갈변되지 않는 감자를 개발해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유전자 조작식품(GMO) 규제 면제 승인을 받았다. GE는 인위적으로 개발한 유전자를 삽입하는 게 아니라 특정 인자만 제거해 비교적 안전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다. 툴젠 관계자는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통과돼도 해외에 비하면 여전히 규제가 많은 수준인데 이마저도 통과가 안 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국내에선 이 같은 유전자 교정 식품이 GMO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가 거세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유전자 교정 식품에 대해 유해성 심사 등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시민단체를 의식한 야당 반대 등으로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바이오산업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가위 기술 등 첨단 생명공학기술 전쟁이 시작되며 제2의 농업혁명이 시작됐지만 한국은 관련 규제에 묶여 시작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여야 간 감정적으로 서로 갈등하면서 국가 경쟁력을 위한 법안의 통과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며 “정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세를 뒤로하고, 국가의 이익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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