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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무 年960시간까지만”… 운전사 구인난에 日 물류위기[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3-11-15 23:39:00

13일 일본 도쿄항 시나가와 부두 도로에 대형 트레일러들이 하역을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운전사 초과 근무를 연 960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근로개혁법이 내년부터 시행되면서 물류 및 대중교통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이상훈 도쿄 특파원


13일 오전 일본 도쿄항 시나가와 컨테이너 부두.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주요국을 잇는 컨테이너선이 오가는 일본 대표 무역항이다. 남북 1.6km, 동서 600m 크기의 인공섬에 부두가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4∼6차로인 도로에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레일러 여러 대가 비상등을 켜고 정차해 있다. 대형 트레일러는 승용차와 달리 도로 한쪽에 붙여 주정차하기 어려워 부두가 있는 인공섬 안에서는 도로 한복판에 차를 멈춰 세우는 게 어느 정도 허용된다.

한 트레일러 운전사는 “오늘은 1시간 정도 기다리면 돼 대기 시간이 짧다. 예전에는 10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고 최근에도 3, 4시간씩 대기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도쿄항 화물기사들의 장시간 대기는 단순한 화물업계의 애로 사항이 아니다. 내년부터 일본에서 확대 시행될 근로개혁법으로 운전사 근로 규제가 강화되면서 물류 및 운송업계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버스 운전사 등 구인난이 본격화되는 한국에 닥칠 미래이기도 하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 2.5개
일본에서는 최근 ‘2024년 문제’ ‘2024년 위기’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2024년 문제’란 내년 4월 1일부터 일본에서 근로개혁법이 추가 시행되면서 운전사 근로시간 규제가 강화되는데 그로 인해 발생할 문제를 뜻하는 표현이다.

일본의 장시간 근로와 이에 따른 건강 악화 및 과로사는 큰 사회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2018년 ‘일하는 방식 개혁 추진을 위한 관계 법률 정비에 관한 법’(근로개혁법)을 제정해 2019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다만 일손 부족이 심한 물류 및 운수업계는 법 시행을 5년 미뤘다.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4년 4월부터 운전사의 시간 외 근무는 연 960시간까지로 제한된다. 지금까지는 시간 외 노동시간에 상한선이 없었다. 노사 협의가 있으면 사실상 무제한 추가 근로가 가능했다.

컨테이너 물류업계는 근로개혁법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업종으로 꼽힌다. 부두 내 트레일러는 정차하며 대기하는 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단순히 기다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화물 하역을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하루 수 시간씩 대기가 이어지면 그만큼 운전할 시간은 줄어든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 같은 장시간 대기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내년에는 일본 전체 화물의 14%, 2030년에는 34%가 제대로 운송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물류업계에 ‘2024년 위기’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일본 인력 중개업체 ‘퍼솔 캐리어’에 따르면 올 들어 물류업체들의 인력 채용 규모는 1년 전보다 60%나 늘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대부분의 업계가 구인난에 직면한 가운데 물류업계는 노동 강도가 높고 그에 걸맞은 급여를 주기 어려워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노동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운전업의 유효 구인 배율은 2.48배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2.48개라는 뜻이다. 일본 전체의 유효 구인 배율이 1.3배 안팎인 걸 감안하면 물류업계 인력난이 극심하다는 뜻이다.



일부 버스노선 폐지… 택시도 줄어
일본의 ‘2024년 문제’는 민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과 비슷하게 일본 역시 버스·택시 운전사는 하루 평균 15시간 가까이 일하는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근로개혁법이 시행되면 이들 운전사의 근로시간이 하루에 최소 1시간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자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인구 감소 및 고령화로 가뜩이나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진 운수업계에는 직격탄이 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도 어려움을 겪는다.

지방에서는 운전사를 확보하지 못해 시내버스 노선이 폐지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오사카 돈다바야시(富田林)시 등을 운행하는 시내버스 업체 곤고버스는 운전사 부족을 이유로 올 12월에 5개 버스 노선 운행을 중단했다. 오사카 공항과 효고현을 잇는 한큐버스도 4개 노선을 이달 5일 폐지했다. 일본버스협회 측은 “현재대로라면 2030년에 운전사가 3만6000명 부족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택시 운전사도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일본 택시 운전사 수는 올 3월 기준 23만2000여 명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이전인 5년 전보다 20%가량 감소했다. 일본 택시 운전사는 애초부터 고령자가 많았다.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 운전대를 놓은 운전사들 가운데 방역 상황이 나아졌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일 자체를 그만둔 경우가 많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교토에서는 택시 회사가 예약 요청의 30% 정도를 소화하지 못한 채 거절하고 있다.

짐을 받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손으로 건네주는 일본 특유의 택배 시스템도 변화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이 확산되면서 한국에서 이미 정착된 ‘현관문 앞에 두기’ 배송이 일본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은 한국 택배처럼 주문한 물건을 문 앞에 두는 것을 ‘초기 설정’으로 지정하고 있다. 일본 최대 택배업체 야마토운수는 주요 쇼핑몰 물품에 대해 ‘현관문 앞에 두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현재 11%인 택배 재배달 비율을 절반 이하로 낮추기 위해 ‘현관문 앞에 두기’를 도입하는 택배업체에 예산을 지원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외국인 운전사-우버 도입 대안으로
하지만 업무 방식 개선만으로 인력 부족 문제를 근본적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업계와 정부 모두 인식하고 있다. 국가 경제에서 물류는 사람의 혈액 순환과 같아서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일본은 외국인 인력 채용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건설, 농업, 숙박업 등 12개 산업 분야에 허용한 ‘특정 기능 비자’ 대상에 운송업을 추가해 외국인 운전사를 받겠다는 것이다. 향후 적용 수준에 따라 가족 동반도 가능하고 체류 제한도 최소화된, 사실상의 영주권을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

도쿄에서는 이미 외국인을 채용한 운수업체도 있다. 도쿄 택시회사 H사는 6년 전부터 외국인 운전사 모집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현재 25개국 87명의 외국인이 일해 전체 운전사 4%가 외국인이다. 지금은 일본에서 살고 있거나 일본인과 결혼한 외국인 등이 주로 일한다. 특정 기능 비자 등 외국인 근로자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외국인 운전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일손이 부족한 분야에서 외국인 인재를 받는 건 갈수록 인력난이 심각해질 일본에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일본에서 논의가 잠잠했던 우버 등 승차 공유 서비스 도입도 수면 위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과거 택시업계 등의 반대로 지지부진했지만 택시 운전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총리 재임 시절 ‘승차 공유’ 도입을 추진했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관광객들이 택시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법을 개정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나가야 한다. 승차 공유도, 택시도 선택할 수 있어야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