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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일자리 없다”… 2년 이상 ‘그냥 쉬는’ 청년 10만명 육박

입력 | 2023-11-16 03:00:00

코로나 이후 줄던 ‘쉬었음’ 청년… 올해 다시 41만 명으로 증가세
정부 “1조원 투입해 일터로 유도”… 적응교육-상담 등 단계별 지원키로
“재탕대책 많아 실효성 의문” 지적도




계약직 치위생사로 일하던 박모 씨(28)는 올 5월 일을 관두고 쉬고 있다. 격무에 시달리다 사표를 낼 때만 해도 조만간 더 좋은 직장을 구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몇 번의 면접에서 탈락한 후 서서히 취업 준비에서 손을 놨다. 현재는 딱히 일자리를 찾지도 않고 있다. 박 씨는 “첫 직장은 최저임금 수준의 초봉이 5년 넘게 제자리걸음이었다. 취준생이 돼보니 갈 수 있는 곳은 비슷한 처우의 회사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더 좋은 대학을 나왔어야 했나 싶어 내년에 수능을 다시 볼까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일을 하지도, 일자리를 찾지도 않으면서 쉬고 있는 청년이 올 들어 10월까지 41만 명을 넘어서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2년 넘게 쉬었다는 청년만 10만 명에 육박했다. 정부는 이들을 일터로 끌어들이겠다며 1조 원짜리 대책을 내놨지만 재탕이 많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전체 청년의 4.9% “그냥 쉰다”

15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41만 명의 청년(15∼29세)이 특별한 이유 없이 무직으로 지내며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았다. 1∼10월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는 청년 중 ‘쉬었음’이라고 답한 이들을 평균 낸 값으로, 전체 청년의 4.9%에 이른다. 청년 ‘쉬었음’ 인구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44만8000명) 정점을 찍은 뒤 2년 연속 감소하며 지난해에는 30만 명대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올해 다시 40만 명대를 넘어서며 증가세로 전환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쉬는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2년 넘게 쉬었다는 청년은 올 5월 9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3000명 늘었다. 1년 넘게 쉬었다는 이들도 전체 청년 ‘쉬었음’ 인구의 44.2%를 차지했다. 3년 전보다 5.3%포인트 늘었다.

그냥 쉰 청년들이 늘어나는 건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이 이달 1일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을 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청년 10명 중 3명(32.5%)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 쉰다고 답했다. 전년보다 4.7%포인트 증가한 수준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근로자 사이의 임금, 고용 여건 격차가 크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한 청년들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문제는 쉰 기간이 길어질수록 질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향후 기대소득도 줄어드는 등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 인적 자본인 청년들의 쉬는 기간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 “일자리 전반의 개혁 필요”

정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쉬는 청년들을 위해 이날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내놨다. 총 9900억 원이 투입되는 이번 대책에는 민간·공공 청년 인턴을 7만4000명으로 확대하고 초기 직장 적응을 돕는 ‘온보딩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업장에 1인당 30만 원을 지원해 근로시간 단축을 유도하는 사업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이전 대책을 그대로 베낀 것들이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20년 행정안전부는 청년 일 경험을 확대하겠다며 공공데이터 관련 청년 인턴십을 모집했다. 하지만 여기에 참여한 청년 25%가 중도에 이탈했다. 이후에도 청년 인턴을 채용하는 중소·중견기업에 지원금을 주거나 정부와 공공기관이 직접 인턴 일자리를 만드는 등 비슷한 대책이 쏟아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 1663억 원 이상을 들여 비슷한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구직 단념을 예방하겠다며 새로 만든 ‘청년 성장 프로젝트’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청년 도전 지원 사업’과 유사하다. 2021년 만들어진 청년 도전 지원 사업은 지자체 청년센터를 활용해 구직 의욕 회복을 위한 상담을 제공하고 청년 정책과 연계해 주는 내용인데, 새로 생기는 청년 성장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 성장 프로젝트에는 내년까지 281억 원이 투입된다.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의 청년층 중 상당수는 충분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쉬는 것”이라며 “취업 지원을 넘어 일자리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