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 학문적 역사 서술을 지향한 투키디데스와 달리 헤로도토스는 다채로운 서사를 보여주는 이야기꾼이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아테나이의 현자’ 솔론의 경고
리디아 왕국의 왕 크로이소스(모자 쓴 인물)가 아테나이의 현자 솔론에게 보물을 자랑하는 모습을 그린 벨기에 출신 화가 프란스 프랑컨 2세의 그림 일부.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려는 크로이소스에게 솔론은 인생의 변화무쌍함을 경고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크로이소스는 기가 찼다. 하지만 솔론은 감언이설로 헛된 희망을 부추겨 권력자를 미혹하는 점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어떤 현자도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현자’였으니까. 그런 현자가 자만에 빠진 왕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인생의 불확실함과 우연성에 대한 경고뿐이었다. 그런 경고가 예언이 되리라는 사실은 아마 솔론 자신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페르시아 원정, 과신이 몰락 불러
크로이소스가 금과 은으로 주조한 주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크로이소스는 두려움에 떨며 전쟁을 회피할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더 커지기 전에 선제공격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에 빠진 크로이소스는 결정을 내리기 전 신탁에 조회했다. 그는 영험하기로 소문난 델포이 신탁소에 사절을 보내 개전 여부에 대해 물었다. “크로이소스가 강을 건너면 큰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신탁이 지목한 강은 리디아의 동쪽 국경을 흐르는 할리스강이었다. 신탁을 들은 크로이소스는 주저 없이 강을 건너 전쟁에 나섰다. 신탁이 예언한 ‘큰 나라’가 어디인지 되묻지 않은 채….
그런 과신이 몰락을 불렀다. 처음에 크로이소스는 승리하는 것 같았다. 페르시아 제국의 도시를 함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로이소스와 그의 동맹군들은 키로스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르데이스가 함락되고 왕은 포로로 잡혔다. 또 어떤 우연이 추락한 왕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헤로도토스는 다시 솔론과의 대화를 상기시키는 일화로 돌아간다. 키로스 앞에 화형장이 준비되고 크로이소스가 그 위에 올랐다. 그런데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그가 세 번 외쳤다. ‘솔론! 솔론! 솔론!’ 느닷없는 외침에 키로스도 궁금해졌다. 그는 사정을 알아보게 했고, 통역이 자초지종을 전하자 마음을 바꿔 화형을 중지시켰다. “그는 자신도 인간이면서 자신 못지않게 유복했던 다른 인간을 산 채로 불태우려 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응보가 두려웠고 인간사에서는 그 어느 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로스는 크로이소스의 운명이 곧 자신의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솔론의 지혜가 결국 두 제국의 왕을 살려낸 셈이다.
잘 풀릴 때 최악을 대비해야
그리스인들은 바다에서 인생을 배웠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거친 바다를 건너지만 항해 중 어떤 일이 어떻게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던 그리스인들에게는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인간이 대비할 수 있는 것과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근본이었다. 변덕스러운 바다에서 배의 돛과 닻줄을 튼튼히 하고 키를 올바른 방향에 맞추는 것 말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일까? 그리스 철학자들이 행운에서도, 역경에서도 변함없는 삶의 태도를 윤리적 삶의 이상으로 여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크로이소스 이야기 속 반전은 끝나지 않았다. 키로스의 가신이 된 크로이소스는 왕이 이웃 나라와의 전쟁 방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런 조언으로 그를 도왔다고 한다. “전하와 전하께서 지배하는 다른 자들이 모두 한낱 인간이라는 점을 알고 계신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지사(人間之事)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어서 같은 사람이 계속 행운을 누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통촉하시옵소서.” 권력과 부가 주지 못했던 지혜를 크로이소스는 추락을 통해서 얻었다. 그의 삶은 비극적인가?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