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안 된 정보 SNS 퍼지며 불안감 더 자극 막연한 공포 달래려면 정확한 지식 제공해야
조은아 파리 특파원
지난주 프랑스 파리 도심에 있는 방역업체를 방문했다. 2시간가량 머물며 취재하는 도중 이 업체 사장에게 10분에 한 번꼴로 문의 전화가 왔다. 모두 빈대 퇴치에 관한 전화였다. 빈대가 실제 생긴 집 말고도 빈대 예방을 위한 문의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빈대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가 있는데 소독할 수 있나’ 같은 질문에서 불안과 공포가 느껴졌다. 우려가 큰 만큼 주택 소독 건수도 급증했다. 프랑스 소독해충방제연합(CS3D)에 따르면 여름휴가를 전후해 유동인구가 늘면서 빈대가 퍼진 올 6∼8월 방역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뛰었다.
한국보다 먼저 빈대 사태가 닥친 파리에서는 빈대뿐만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빈대 퇴치법이 소셜미디어에 난무한다. 대표적인 허위 퇴치법은 폭약 제조에 쓰이는 규조토(硅藻土)가 빈대를 쫓는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7일 쇼트폼(short form)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오른 ‘빈대의 유일한 해결책은 규조토’란 영상은 닷새 만에 조회 수가 2만2600회를 넘었다. 오일 농축액이나 라벤더가 살충제보다 더 건강한 자연 퇴치법이란 영상 콘텐츠도 돌고 있다. 이에 편승해 검증되지도 않은 빈대 퇴치 약품을 판매한다는 광고도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퇴치법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규조토는 광물질 화합물 실리카가 포함돼 폐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라벤더도 퇴치 효과가 없고 오일 농축액은 사용자 호흡기를 자극할 우려가 크다고 한다.
빈대 공포는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더욱 커진 측면도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처럼 빈대 때문에 일상이 마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빈대 공포가 정부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계기가 될 조짐도 보인다. 빈대 퇴치는 초기 대응이 관건인데 “프랑스의 ‘밀푀유(겹겹이 층을 쌓아 만든 디저트) 정부’ 탓에 대책이 늦게 나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의사결정 구조가 겹겹이 쌓인 관료주의 탓에 정부가 퇴치 대책을 신속하게 내놓지 못했다는 얘기다.
프랑스에서 탐지견을 활용한 방역 업체를 운영하는 전문가는 NYT에 ‘노란 조끼’ 시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정부의 정년 연장 강행, 물가 상승같이 지난 3년간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빈대 사태로 집단 분출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산적한 위기에 또 하나의 위기를 정부가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프랑스에 이어 빈데믹(빈대+팬데믹)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한국으로선 참고할 바가 많다. 프랑스 정부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다양한 방역 대책을 내놨다. 특히 방역 업체 전문성을 정부가 인증해 방역 협회 홈페이지에 공개해 사실상 ‘빈대 플랫폼’처럼 만드는 것은 우리 정부가 벤치마킹할 만하다. 빈대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빈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여러 채널로 효과적으로 알려야 한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