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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추상화, 한국 미술에도 100년 전 싹터

입력 | 2023-11-17 03:00:00

196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윤형근의 ‘69-E8’ 유족이 발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해 첫 공개
유영국 작품은 뉴욕서 첫 개인전




한국에서 추상 미술이라고 하면 흔히 앵포르멜(1940, 50년대 유럽의 즉흥적 비정형 회화)이나 단색화가 떠오른다. 그러나 20세기 추상화의 출발로 여겨지는 피터르 몬드리안(1872∼1944)과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가 그린 기하학적 추상화는 우리 미술계에도 1920, 30년대부터 영향을 끼쳤다. 기하학적 추상의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16일 개막했다. 전시에 소개된 작가 가운데 유영국(1916∼2002)은 미국 뉴욕에서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 윤형근 색면 추상 최초 공개

고 윤형근 작가가 196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작품 ‘69-E8’.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선 윤형근(1928∼2007)이 1969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하며 출품한 ‘69-E8’이 처음 공개된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만 확인됐을 뿐 그간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 유족이 재작년 작업실을 정리하며 발견했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마직물이나 한지에 먹색을 번지게 한 무채색의 대표작과 달리 이 작품은 강한 색채가 눈에 띈다.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런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건축과 미술의 만남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윤형근도 김중업, 김수근 등 당대 대표적 건축가들과 교류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기하학적 추상과 디자인·건축 등의 분야가 서로 주고받은 영향을 짚는다. 첫 번째 섹션 ‘새로움과 혁신, 근대의 감각’에서는 미술과 디자인, 문학까지 확장된 기하학적 추상의 사례를 살펴본다. 김환기의 ‘론도’(1938년)와 유영국의 ‘작품1(L24-39.5)’(1939년)을 시작으로 1930년대 단성사와 조선극장에서 제작한 영화 주보, 시사 종합지의 표지를 함께 전시해 비교해볼 수 있게 했다.

특히 시인 이상(1910∼1937)이 기하학적 구성으로 디자인한 잡지 ‘조선과 건축’과 시집 ‘기상도’의 표지도 볼 수 있다. 총독부 건축과 기사였던 이상은 미쓰코시 백화점 내외부의 기하학적 모습을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라고 시 ‘건축무한육면각체: AU MAGASIN DE NOUVEAUTES’에 표현하기도 했다.

이 밖에 1957년 한국 화가와 건축가, 디자이너가 결성한 ‘신조형파’의 활동상을 다룬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한 추상미술을 모은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 1960, 70년대를 다룬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 기하학적 추상을 오늘날 작가들이 신작으로 재해석한 ‘마름모-만화경’까지, 총 5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작가 47명의 작품 150여 점을 볼 수 있다. 내년 5월 19일까지. 2000원.




● 유영국 뉴욕 첫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16일 개막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에 추상화가 고 유영국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왼쪽부터 ‘산’(1968년), ‘산(남)’(1968년), ‘산’(1970년). 이번 전시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작가가 그린 여러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과천=뉴시스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는 유영국의 해외 첫 개인전 ‘Mountain Within’이 10일(현지 시간) 개막했다. 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 등 1960, 70년대 작품 17점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12월 23일까지 열린다. 아니 글림셔 페이스갤러리 회장이 유영국을 두고 ‘톱 클래스 화가’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페이스와 PKM갤러리,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내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도 유영국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유영국의 아들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가 1940년대 일본에서 귀국 후 해외 미술 동향을 접할 수 없어 선택한 것이 가장 변하지 않는 주제인 산”이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가 산의 형태를 본질만 남기고 자신의 느낌을 색채로 입혔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러한 보편성이 해외로도 전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