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과 나/배명훈 지음/304쪽·1만5800원·래빗홀
“아, 망했다. 간장게장이 먹고 싶어.”
어느 날 이사이는 이런 충동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주위 동료들은 고개를 젓는다. ‘게살 맛이 나는 합성 단백질 식품’을 권할 뿐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선 식량이 아니라 음식이 필요하다는 이사이의 말에 동료들은 동의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한다.
사실 이사이가 사는 곳이 한국이라면 간장게장을 먹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해외라도 발품을 팔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사이가 사는 곳은 다름 아닌 화성이다. 화성에 해산물을 들여오려면 바다와 비슷한 인공 생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수조 전체를 방사선 차단 시설 안에 둬야 한다. 특히 생물을 산 채로 화성으로 배송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이사이는 “포기하라고 하지 마세요! 우리(화성인)는 계속 원하고 싶은 걸 원할 거예요!”라고 소리친다. 단편소설 ‘위대한 밥도둑’의 내용이다.
화성 이주 초창기 벌어진 첫 살인 사건을 그린 ‘붉은 행성의 방식’부터 인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뒤 개발 제한 구역을 해제할지 여부를 다룬 ‘나의 사랑 레드벨트’까지 인류의 화성 이주 과정을 시기대로 풀어냈다. 지구 기상학자와 화성에 사는 유전학자의 연애를 담은 ‘김조안과 함께하려면’, 화성에서 태어났으나 지구로 이주하는 이의 이야기인 ‘행성 탈출 속도’에선 인간 군상의 모습을 애잔하게 그렸다. ‘행성봉쇄령’처럼 첨예한 행성 정치 문제도 정면으로 다뤘다. ‘작가의 말’에서 “새로 시작한 행성의 문명은 지구에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가뿐히 초월한 문명이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