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김민기 대표 투병으로 33년만에 폐관 소극장 존재 의미, 방향 짚은 후 대책 세워야
손효림 문화부장
“연애할 때 아내에게 보여준 작품이에요. 덕분에 점수를 딴 것 같아요.”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15일 한 중년 남성이 웃으며 아내를 바라봤다. 손에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티켓 두 장이 있었다.
학전이 경영난과 김민기 학전 대표(72)의 위암 판정으로, 개관한 지 33주년이 되는 내년 3월 15일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마지막 공연을 보려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학전 측은 폐관 소식이 알려진 뒤 쏟아진 뜨거운 관심에 놀란 분위기였다. 격려를 위해 전화로 혹은 직접 방문해 표를 사는 이들이 많다. 내년 2월 말부터 박학기, 동물원, 유리상자, 시인과 촌장 등 학전과 인연 있는 가수들이 릴레이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는 지원 방침을 밝혔다. 학전 관계자는 말했다.
“그동안에도 지원을 많이 받았지만 버틸 수 없었어요.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좌석에, 가격은 영화관보다 비싼 소극장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 저희에게 제일 중요한 건 마지막까지 무사히 공연을 마치는 거예요.”
‘지하철 1호선’ 개막 4일 차인 이날 사무실 화이트보드엔 ‘무사고 3일 차!’라고 쓰여 있었다. 직전 공연 후 쓴 듯했다.
1991년 문을 연 학전에서는 동물원, 들국화, 안치환 등이 콘서트를 했고 김광석은 데뷔 10주년 기념 공연을 열었다. 다음 달 31일까지 공연되는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 후 2008년까지 약 4000회 공연해 70만 명 넘게 관람했다. 황정민 조승우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나윤선 등 스타를 대거 배출했다. 뮤지컬 ‘의형제’로 1999년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았다. 뮤지컬 ‘고추장 떡볶이’, ‘우리는 친구다’ 등 어린이 공연에 힘쓴 건 “처음 보는 공연이 좋아야 안목을 갖출 수 있다”는 김 대표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모내기할 모를 기르는 논이 되겠다며 김 대표가 세운 학전(學田)은 이름처럼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광석이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새긴 학전 앞 노래비에는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있었다. 노래비는 김광석이 1995년 학전에서 1000회 콘서트를 한 것을 기념해 세웠다. 노래비 앞에는 종종 소주 한 병, 장미 한 송이가 놓여 있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잘못된 사실에도 대충 익숙해져버리려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한 번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제 노래 인생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행복하세요.”
노래비에 새겨진 김광석의 말이다. 삶의 태도에 대한 얘기지만 한편으론 소극장을 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이기에 앞서, 그 존재의 의미와 방향을 차근차근 짚어보라는 당부처럼 다가왔다.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