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일 경우 사우디 첫 실전에서 성공적 데뷔전 치른 셈… 추가 수출 기대
한국산 다연장로켓 ‘천무’. [뉴시스]
이스라엘 비난하는 사우디 속내
사우디는 11월 11일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 특별 정상회의에서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했다.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은 점령 당국에 있다”면서 “가자지구 포위를 끝내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용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스라엘을 성토했다. 이를 두고 대다수 국내외 언론은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편을 들고 있으며, 이란과 함께 반(反)이스라엘 공동전선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재 사우디가 취하고 있는 군사적·외교적 행보를 보면 빈 살만 왕세자의 이스라엘 비난은 아랍권 여론을 의식한 레토릭으로 보인다.사우디는 미국과 이스라엘 공군기에도 영공을 개방했다. 최근 미국은 이라크·시리아 지역에서 계속되는 친이란 민병대의 공격에 대응해 제한적인 공습 작전을 수행 중이다. 이와 동시에 사우디와 요르단, 바레인 등에 공군력을 전개해 이란을 겨냥한 대규모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군사 행동에 나서자 사우디는 자국 영공 사용을 허가했다. 아랍 세계 강대국으로서 사우디는 같은 이슬람 세력인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며 각종 구호물자를 보내지만, 기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수월하게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수니파 vs 시아파, 이슬람 세계 오랜 갈등
사우디아라비아군 수뇌부가 3월 31일 전방 부대에 배치된 한국산 다연장로켓 천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SNS 캡처]
사우디는 오래전부터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극단주의 단체들과 싸워왔다. 2014년 이후 계속된 예멘 내전은 수니파 정부와 시아파 후티 간 싸움인데, 사실상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란은 후티 반군에 군사고문단과 무기를 제공했고, 사우디는 수니파 정부군을 도우면서 아예 다국적군을 만들어 참전했다. 올해 4월부터 사우디가 주도해 후티와 평화협상을 하고 있지만 협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상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우디가 이곳을 무엇으로 타격했는지 여부다. 사우디는 그동안 후티 반군을 공격할 때 전투기 공습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번 공격은 공군이 아니라 포병이 수행했고, 국경에서 40㎞ 이상 떨어진 지역을 타격했다. 사우디 포병이 보유한 무기 가운데 40㎞ 이상 거리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는 두 종류다. 미국 M270 MLRS와 한국산 다연장로켓 K239 ‘천무’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포격한 사다를 사정권에 둔 사우디군 포병부대는 남부 국경 인근 ‘나지란’ 지역에 있는 K239 포대다. 이 부대는 사다와 직선거리로 약 70㎞ 떨어져 있어 사격진지 이동 없이도 포격이 가능하다.
비밀리에 1조 원 규모의 천무를 수입해 일선 부대에 배치한 사우디는 후티와 평화협상을 시작한 4월 예멘 국경에 있는 K239 부대를 처음 일반에 공개했다. 사우디가 수입한 천무는 사거리 45㎞ 무유도탄인 230㎜ 로켓과 사거리 80㎞ 유도탄인 239㎜ 로켓 두 종류다. 사우디가 이번 공격에 천무를 동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후티 반군이 보유한 모든 유형의 포병 무기보다 긴 사거리를 지녀 포격 후 반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티 반군은 이번에 포탄 수십 발을 얻어맞고도 사우디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실제로 대응 사격도 하지 못했다.
이번 포격이 주목받는 이유는 사우디가 동원한 포병 자산이 정말 천무라면 이번이 천무의 첫 실전 데뷔가 되기 때문이다. 사우디 측 의도는 후티 반군의 보복 공격 가능성을 차단하고 일방적으로 포격을 퍼붓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천무는 사우디의 작전 의도를 완벽하게 달성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셈이 된다. 크게 선전할 만한 일이지만, 비밀리에 구입해간 외국제 무기의 전과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온 사우디 측 관행상 이번 포격의 구체적 진상도 당분간 공개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중동 ‘현궁 인증’ 이어져
한국산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현궁’. 예멘 후티 반군이 지난해 9월 미사일을 동원한 군사 퍼레이드에 나섰다.[뉴스1, 뉴시스]
이 같은 ‘현궁 인증’은 사우디군뿐 아니라 후티 반군 진영에서도 나왔다. 후티 반군은 노획한 현궁으로 사우디 진지와 차량을 공격하는 영상을 촬영해 SNS에 게재했다. 후티 반군이 현궁으로 자국군을 공격하자 사우디는 더 많은 현궁을 일선에 보급해 차량이나 건물, 진지 등 의심 가는 목표물에 대량 발사하기도 했다. 현궁은 사용이 간편해 복잡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고 휴대성도 좋다. 게다가 명중률과 위력도 발군이라 일선의 입소문을 타면서 예멘 내전을 계기로 중동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현궁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됐고, 사우디와 밀접한 협력 관계인 예멘 정부군, 아제르바이잔군도 이를 운용하고 있다.
美 하이마스 뛰어넘는 천무 성능
천무는 보병 휴대용 장비인 현궁처럼 쉽게 유통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지만 사우디는 물론 UAE에서도 기존 다연장로켓 장비를 뛰어넘는 성능과 신뢰성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만약 사우디군의 이번 후티 반군 공격이 실제로 천무로 이뤄진 것이라면 성공적인 실전 데뷔로 현궁처럼 ‘입소문’을 타 추가 수출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현궁 성능은 비슷한 무기체계로서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미국 ‘재블린’ 상위호환이다. 천무 역시 미국 MLRS나 ‘하이마스(HIMARS)’를 압도하는 성능과 경쟁력을 갖췄다. 천무는 MLRS보다 기동성이 우수하고, 하이마스보다 다양한 탄약을 더 많이 운용할 수 있다. 자동화된 사격통제장치를 갖춰 발사 준비 시간과 사격 후 진지 이탈 소요 시간도 짧다. 다연장로켓으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폴란드 수출 사례에서 증명된 것처럼 MLRS나 하이마스보다 우수한 데다 가격이 저렴하고 납기도 빠르다.사우디가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보인 행보를 이어간다면 후티와 평화협상은 물 건너갈 것이다. 국경에 배치된 천무의 실전 사용 빈도도 늘어날 테다. 과연 천무가 현궁이 그랬던 것처럼 중동 지역에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고 세계 최강 다연장로켓 시스템으로 입소문을 타 추가 수출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15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