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에서 은퇴한 후 현모양처로 10년을 보낸 박지은 SBS골프 해설위원은 제3의 인생을 향해 고민을 하고 있다. 박 위원이 엄지를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이헌재 기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6승을 거둔 박지은 SBS골프 해설위원(44)은 전성기 시절 인기가 대단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지만 미국에선 그레이스 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 했다. 2003년 그는 세계적인 스포츠브랜드 나이키골프와 후원 계약을 했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 골퍼로는 1호였다. 현재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신성; 김주형의 메인스폰서이기도 한 나이키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 등 특급 스타들만 후원하는 걸로 유명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인 박지은의 팬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박지은은 2002년 미국에서 열린 이벤트 대회인 2002현대팀매치스 프로암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프레드 커플스 등과 함께 라운드를 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박지은에게 “꼭 한 번 당신과 라운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골프광’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박지은에게 여러 차례 동반 라운드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들과의 라운드는 성사되지 않았다. 박지은은 “돌이켜보면 왜 그때 같이 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시즌이 끝나면 빨리 한국에 돌아와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며 웃었다.
박지은은 LPGA에서 뛸 당시 ‘필드의 모델’ ‘미녀 골퍼’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동아일보 DB
2012년 결혼과 함께 필드를 떠난 그는 요즘 오랜 꿈이었던 ‘현모양처’의 삶을 살고 있다. 초등학교 때 골프채를 잡은 후 은퇴할 때까지 운동이 일상이었던 그는 결혼 후 요리를 배우고 꽃꽂이도 익혔다.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생 두 딸의 엄마인 그의 생활 대부분은 육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간간이 골프 해설을 통해 팬들과 만난다. 그는 “올해는 3주에 한 번 꼴로 해설을 했다. 해설이 쉽지만은 않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6시간, 날씨 등으로 경기가 미뤄지면 10시간을 해야 할 때도 있다”며 “그래도 많은 엄마들이 공감하듯 그렇게 밖에 나가는 게 쉬는 것이다. 방송국 PD님들께도 해설이 내겐 ‘휴가’인 것 같다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 하와이에서 라운드를 하는 박지은(왼쪽)과 큰딸. 박지은 인스타그램
비어있는 오전 시간에 그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골프를 쳤다. 카트를 타지 않고 푸쉬 카트를 끌며 잔디를 밟았다. 그는 “골프장은 오전 8시에 문을 열었다. 같이 와 있는 다른 엄마들과 항상 첫 팀으로 나갔다”며 “18홀을 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 운동 삼아 9홀 골프를 쳤다. 선수 때 종종 해 봤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하루의 첫 잔디를 밟는 경험이 새삼 새로웠다”고 했다.
박지은의 딸은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골프에도 재능을 보이고 있다. 오르쪽은 딸의 캐디로 나선 박지은의 모습. 박지은 인스타그램
2004년 대회 때 함께 라운드를 한 박지은, 김미현, 박세리(왼쪽부터). 세 선수는 LPGA 에 진출한 한국 여성 골퍼 1세대들이다. 동아일보 DB
지난달 부산 기장에서 열린 ‘박세리 월드매치’에서는 79타를 쳤다. 그는 “그날 아웃 오브 바운스(OB)를 몇 방 내고도 79타를 쳤으니 그리 못 친 것 아니다”고 했다. 그는 “골프장에 가면 일부러 카트 도로 근처로 공을 친다”며 “그렇게 쳐야 걸어 다니면서 골프채를 쉽게 바꿀 수 있다”며 웃었다.
결혼 후 본격적인 육아에 뛰어든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 때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둘째를 39살에 낳았다. 동년배 엄마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해 관리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원래부터 살찌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운동 그만두더니 살 쪘더라’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1.5끼’를 먹는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기 전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점심에는 먹고 싶은 걸 양껏 먹는다. 대신 저녁은 간단한 과일 등으로 대신한다.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로부터 역대 가장 위대한 여성 선수로 꼽힌 박지은.
그는 요즘 일주일에 세 번씩 퍼스널 트레이닝(PT)를 받는다.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한 번에 50분 가량 운동을 한다. 많은 무게를 들기보다는 근력을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 그는 “부위별로 운동을 하기보다는 상체와 하체, 복근 등 전신운동을 한다”며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고 나면 혈색이 달라지고 활력이 돋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만 무리한 운동은 피한다. 그는 “과하게 운동하면 피곤해 질 수 있어 피곤해지기 직전까지만 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틈나는 대로 집 근처인 서울 남산 둘레길을 걷는다. 남산타워까지 올라갈 때도 있다. 박지은은 “가능한 한 하루 만 보 이상을 걸으려고 한다. 운동량을 체크하려고 얼마 전에 애플워치도 구매했다”며 했다.
박세리 월드매치에서 한 자리에 선 박지은, 최나연, 김하늘, 한희원의 모습. 대회 조직위 제공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