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의 11월 17일 당 원내대책회의 중 발언입니다. 너무 공감되는 지적이라 원문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왼쪽), 김용민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검사범죄대응TF 회의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원석 총장도)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검찰총장으로서 헌법을 위반했다. 특수부 검사들에 대한 탄핵이 발의되자 아프다는 듯 소리쳤다. (중략) 이원석의 특수부 검사 지키기는 군부독재의 하나회 지키기 같다. 검찰총장의 경거망동에 경고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총장을 해임하거나, 적어도 공개경고하길 바란다. 범죄검사에 대해 민주당은 추가 탄핵을 추진할 것이고 그 대상 범위를 확대할 것이다.”
당연히 회의 직후 기자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고, 최혜영 원내대변인은 “이 총장 탄핵이 맞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논의는 될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대소동이 시작된 시점입니다.
최 원내대변인의 말과 달리 당 원내지도부는 이후 이어진 동아일보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검토한 적 없고,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김용민 의원도 곧 해당 기사 링크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검토한 바 없습니다”고 적었습니다. 결국 최 원내대변인은 “이원석 총장 탄핵과 관련해 ‘논의될 것 같다’고 한 발언한 것은 ‘잘못이 있으면 논의할 수도 있다’는 취지이며, 검찰총장 탄핵은 논의한 적도 논의 계획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백브리핑 정정’ 공지를 냈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처럼 끝나는가 싶었는데, 기류가 묘하게 이상하더군요. 절대 아니라고 선을 긋는 원내지도부와 달리,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복수의 당 핵심 인사들이 거듭 ‘이 총장에 대한 탄핵을 들여다본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B 씨 “(탄핵 대상이) 과연 4명만일까?”, “대상이 누구든, 총장이든, 지금 정권 비리를 비호만 하고 공정한 수사를 하지 않는다 하면 누구든 검토된다.”
결국 공식 회의 석상에 의제로 올라가지 않았을 뿐, 극히 일부 핵심 지도부 논의 과정에서 ‘이원석 총장도 탄핵하자는 말도 있던데요?’라는 식으로 언급이 됐다는 겁니다. 특히 이재명 대표도 여기저기서 검찰총장 탄핵 필요성을 전해 듣고 있어서 주변에 그런 요구들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같은 당내에서도 한쪽에선 맞는다고 하고, 한쪽에선 틀리다고 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한 장관도 등판했습니다. 그는 이날 과천 법무부 청사를 나가며 작정한 듯 “민주당은 이제 하루 한 명씩 탄핵을 추진하는 것 같다”며 “판사를 탄핵했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탄핵했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을 탄핵한다고 했고, 검사 세 명을 탄핵한다고 했고, 저를 탄핵한다고 했다가 발을 뺐고, 오늘은 검찰총장 탄핵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안 좋으니 말을 바꿨다”며 민주당이 최근 꺼내 들었던 탄핵 카드를 줄줄이 읊었습니다.
이어 “민주주의 파괴를 막는 최후의 수단으로 국회 측에 탄핵소추가 있고 정부 측에 위헌정당심판 청구가 있다. 만약 법무부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민주당에 대해 위헌정당심판을 청구하면 어떨 것 같은가”라고 취재진에게 되묻더군요. 그러더니 “법무부는 현재 위헌정당심판 청구를 할 계획이 없다”며 “국가기능을 마비시키고 혼란스럽게 해서 나라를 망치고 국민께 피해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길이라면, 정말 그것 말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이 발언에 민주당이 완전히 들끓은 겁니다. 김용민 의원은 15일 MBC라디오에서 “민주주의의 질서를 완전히 흔들어버리는 굉장히 심각한 발언”이라며 “한 장관은 금도를 넘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위헌정당 심판은 민주주의에서 극약 처방이다. 탄핵이랑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다”라며 “한 장관이 실제 내심을 얘기한 게 아닐까 싶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장관 본인이 정부를 대표해 위헌정당 해산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 번이라도 검토했거나 머릿속에 생각하지 않고서는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민주당도 한 번이라도 검토했거나 생각을 했으니 ‘검찰총장 탄핵’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러니 당연히 “민주당 내에서부터 말을 맞추라”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요. 17일 대구를 찾은 한 장관은 “민주당 내부 교통정리를 먼저 해야 될 것 같다. 당내에서도 어디서는 한다고 했다가 10분 뒤에는 안 한다고 했다가, 왔다 갔다 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등이 10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기 위한 국회 본회의를 열어달라며 김진표 국회의장실을 찾아가는 모습.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탄핵 남발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에서 규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거대야당의 ‘탄핵 간보기’는 한 장관, 이 총장 선에서 멈추지 않죠. 김용민 의원은 19일 광주에서 열린 민형배 의원의 북콘서트에 참석해 “반윤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행동을 민주당이 먼저 보여야 한다. 그 행동이 윤석열 탄핵 발의라고 생각한다”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꺼내들었습니다. “탄핵안을 발의하면 국민의힘에서도 동의할 사람들이 많다”는 그의 주장에 민 의원은 “일단 탄핵 발의를 해놓고 나서 반윤 연대를, 반검찰독재연대 정치연대 등을 꾸려서 선거연합(으로) 이렇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제안이 유효하다”고 거들었고요.
이 정도면 원내 1당이자 제1야당인 민주당이 ‘탄핵’이라는 두 글자의 무게감을 망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 박근혜 등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온 국민이 받았던 충격과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그렇게 막 던질 수 있는 카드는 아닐 텐데요.
윤 원내대표의 17일 당 회의 발언을 조금 더 인용하며 칼럼을 마치겠습니다.
“탄핵은 중대한 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 합의를 바탕으로 매우 무겁게 추진돼야 할 정치적 결단이다. 그런데 드러난 위법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조직을 표적 삼아 러시안룰렛처럼 대상자를 선정하고 탄핵하겠다는 건 위중한 탄핵권을 마치 게임처럼 다루는 무책임한 태도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