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미지 활용 나선 명품 브랜드들 전통-현대-미래 요소 두루 갖춰 주목 헤라·더현대서울 등 서울 이미지 선점 성수·한남 등 지역별 감성에 주목하라
구찌는 경복궁이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문화유산이란 점에 주목해 올해 5월 경복궁 근정전에서 ‘2024 구찌 크루즈 패션쇼’를 열었다. 사진 출처 구찌 홈페이지
디오르, 루이비통, 구찌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서울을 주목하고 있다. 디오르는 2022년 이화여대, 루이비통과 구찌는 올해 각각 잠수교, 경복궁에서 신제품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진행했다. 디오르는 서울의 이름을 딴 ‘서울 스칼렛’ 립밤을 선보이기도 했다.
도시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브랜딩 전략은 이전부터 적극 활용됐다. 미국 뉴욕의 백화점 ‘바니스 뉴욕’은 전 세계 어디에 지점을 열어도 그 이름에 ‘뉴욕’을 빼놓지 않으며, 현대자동차의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팰리세이드’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해변 지역인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지어졌다.
특히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도시로 여겨졌던 파리, 뉴욕을 대신해 서울이 그 계보를 잇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기에 글로벌 브랜드들이 앞다퉈 서울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11월 1호(380호)에 실린 ‘서울 이미지를 활용한 브랜딩 전략’을 요약해 소개한다.
● ‘멀티 페르소나’ 도시
서울은 전통과 현대라는 다소 상반된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다는 점에서 브랜드가 표방하는 헤리티지와 혁신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조선 시대의 고풍스러운 전통 유산과 함께 정보기술(IT), 반도체 산업의 첨단 이미지가 혼재된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고층 빌딩들 사이로 경복궁까지 쭉 뻗은 광화문 일대의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찌는 문화재위원회에 경복궁 허가를 신청하며 “경복궁은 과거와 현대의 교차점에서 미래를 이끄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라며 “경복궁이 지닌 장소성과 역사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고 싶다”란 내용을 전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600년이 넘은 서울의 경복궁에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이러한 선포는 서울이 K컬처에 열광하는 글로벌 팬덤을 끌어모으기 위한 글로벌 브랜드의 새로운 전쟁터가 됐음을 시사한다.
서울은 미래 도시의 이미지로 비치기도 한다.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는 서울과 관련된 게시글에 ‘#Cyberpunkseoul’이란 태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이버펑크(Cyberpunk)’는 기계화된 세상을 그리는 공상과학(SF) 문학의 한 장르를 일컫는 말로, 밤늦게까지 상점들이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일제히 문을 열고 있는 서울의 모습이 외국인들에게는 사이버펑크 작품 속 도시처럼 보이기에 붙여진 것이다.
● 서울에 주목하는 한국 기업들
글로벌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던 국내 기업들도 서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신제품 공개 행사인 ‘갤럭시 언팩’은 2009년 이후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렸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본고장인 서울에서 개최됐다.
아모레퍼시픽의 헤라가 블랙핑크 멤버 제니와 함께 촬영한 ‘서울리스타’ 광고에는 미래 도시 분위기가 나는 ‘사이버펑크’ 서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출처 아모레퍼시픽 홈페이지
요즘 한국, 특히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더현대서울이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인식된 데는 ‘서울’이란 브랜드 이미지를 선점한 현대백화점그룹의 신의 한 수가 있었다. 더현대서울은 백화점이 들어서는 동네 이름을 넣는 전통적인 네이밍 방식을 버리고 과감하게 ‘서울’이라는 도시명을 이름에 넣었다.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이란 이름을 사용했다면 인근 목동점과의 차별화가 어려웠을 것이며 쇼핑해야 할 때 방문하는 동네 백화점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의 뜨는 콘텐츠’를 팝업 스토어로 한자리에 모아 사람들의 발길을 끈 전략도 주효했다.
● 로컬 감성에 대한 이해 필요
따라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브랜딩에 활용하고자 한다면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다. 그러기 위해선 서울의 전체적인 이미지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서울 내 특정 지역의 이미지까지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사이버펑크 서울의 모습은 네온사인 간판이 가득 들어선 을지로 골목이나 과거 공업 지역을 재개발하고 있는 성수동 일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은 광화문을 비롯해 익선동 등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브랜딩 활동의 목적에 따른 지역 선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세계적인 갤러리, 레스토랑이 즐비한 한남동, 연남동 일대는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브랜드에 적합하다. 또한 풍부한 인구 유동성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싶은 브랜드라면 매주 30∼40여 개의 팝업 스토어가 들어서는 성수동을 주목할 만하다. 모든 브랜드가 획일적으로 주목하는 지역에서 벗어나 신선한 인상을 전달하고 싶다면 양재천, 장충단길 등 잠재력을 갖춘 신흥 지역들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 mindy@trendlab506.com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