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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칼럼]2030은 모르겠고 표는 얻고 싶은 민주당

입력 | 2023-11-19 23:51:00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2030 겨냥한 민주당 현수막 논란
내부서도 “최악” “시대착오” 비판



천광암 논설주간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더불어민주당이 23일 공개될 ‘새로운 민주당 캠페인―더민주 갤럭시 프로젝트’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티저’용으로 준비했다가 논란이 된 현수막 문안이다. 1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도 보고됐고, 각 시도 당 위원회 등에도 관련 공문이 내려갔다고 한다.

민주당 설명에 따르면 이 캠페인은 ‘개인성과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2030세대’를 주로 겨냥한 것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 ‘나에게 쓸모 있는 민주당’으로 변화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즉 내년 총선을 앞두고 2030 청년세대의 호감을 사기 위해 마련한 전략적 캠페인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민주당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 현수막은 당내에서조차 청년세대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파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민주당 내 ‘청년당원 의견그룹’이 17일 “근래 민주당의 메시지 가운데 최악, 저질”이라는 격한 논평을 냈을 정도다. 같은 날 당직자와 보좌진들이 모인 당 홍보국 단체대화방에도 “문구가 너무 시대착오적”이라는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파문이 커지자 민주당은 19일 뒤늦게 홍보 문구를 교체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문안은 업체가 준비한 시안”이라며 “당이 개입한 사안은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놨다. 최고위원회의에 보고되고 시도 당 위원회에 공문까지 내려갔는데, 해명치곤 구차스럽다.

민주당이 청년과 관련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에는 민주당 후보였던 박영선 전 의원이 낮은 20대 지지율에 대한 설명으로 “20대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과거의 역사에 대해 30, 40대나 50대보다는 경험한 경험 수치가 좀 낮지 않냐”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이에 앞서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던 2019년에는 설훈 의원과 홍익표 의원의 ‘민주화 교육 부족’, ‘반공 교육’ 발언이 문제가 됐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개인 차원에서 나온 실언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이번 현수막 게시는 개인이 아닌 당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라는 점에서 좀 더 심각하다. 청년당원들 모임인 ‘파동’이 “지금까지 우리 정치사에서 어느 정당이 당의 이름을 내걸고 한 세대를 조롱한 적이 있던가”라고 개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이번 현수막은 내용 면에서도 종전 발언들에 비해 문제의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우선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라는 문구 속에 상정된 청년들의 초상(肖像)은 정치가 만들어 나가는 국가와 공동체의 운명이나 미래에는 무관심하면서, 자신의 삶만 나아지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모습이다.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라는 문구 속에 비치는 청년들의 초상도,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나 요행을 바라는 일그러진 모습이다.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지금의 2030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공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대다. 불이익도 참지 않지만, 나만의 특혜도 바라지 않는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나만의 요행이 아닌 누구에게나 부여되는 공정한 기회다.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이런 청년들을 모독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물론 민주당이 일부러 청년세대를 비하하기 위해 이런 현수막을 내걸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나 경제를 모르는 사람도 잘 살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정당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알고, 고민하고, 참여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주권자의 소중한 권리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정책과, 당장은 입에 달지만 결국 ‘나랏빚’으로 쌓여 언젠가 자신의 부담으로 돌아올 싸구려 ‘포퓰리즘’ 정책을 구별해 내려면 경제를 몰라서는 안 된다. ‘정치나 경제를 몰라도 괜찮다’는 건 당당한 주인이기를 포기하고 포퓰리즘의 제물이 되라는 이야기다. 기회만 있으면 ‘참여’를 말하는 정당이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앞서 ‘파동’의 논평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청년세대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어설픈 ‘현수막 마케팅’이 아니라 제대로 된 ‘민생 정책’을 선보이기 바란다.”

‘2030은 모르겠고 표는 얻고 싶다’는 식의 민주당 기성세대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말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